이전 시대, 총에 맞았을 때...

검과 창으로 싸우던 시대의 부상은 찔리고 베이는 형태였죠.
이런 상처는 급소가 아닌 한은 또는 해당 부분이 답이 없다할 정도로 절단된게
아니라면 그나마 어떻게든 치료 할 수는 있었죠.

확실한건 이전부터 상처에 이물질 - 옷조각이나 흙먼지등등 - 이 들어가면 항
상 문제를 일으킨다는건 경험적으로 알았으니 이에 대한 조치를 하긴 합니다.

물로 씼어내거나 닦아내거나 또는 몇분 정도 그냥 방치해서 자연스럽게 이물이 피와 함
께 외부로 배출되기를 기다리거나 했으니. (상처를 그냥 방치해서 자연스럽게 출혈에
따라 이물이 배출되기를 바라는건 많은 경우 되려 상처가 더 커져서 나중에 더 조치하
기 힘들어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그런 다음 베인 상처라면 양쪽에 접착제를 바른 밴드(butterfly bandage)를 대서 묶거
나 아님 실로 봉합을 해버렸죠.


이게 butterfly bandage
반창고가 없을 때 알아뒀다 써보셔도 됩니다.
제일 좋은건 이런거 필요없는 것이겠지만서도.

물론 이런 수준을 벗어난 부상도 생기기 마련입니다.
오래전부터 치명적인 상처로 취급된 복부의 손상과 내장의 손상, 그에 따른 복막염으로
가는 과정처럼.
이런 경우, 사실상 살리기 어려웠던 편이고 살릴 방법도 없던 상황이었죠.

그런데 이 검과 창, 화살에 의한 상처는 총이 등장할 때쯤에 비하면 그나마 얌전한 수
준이었을 겁니다.
그 작은 납덩어리 하나가 어떻게 수복을 하기 힘들 정도의 구멍을 내버리거나 뼈를 완
전히 박살내버렸으나.


물론 이렇게 되면 이도저도 안됩니다.
최근 발굴된 에스파냐인의 화승총에 맞은 잉카인의 두개골.

그나마 얕게 박힌 총알은 탐침이나 의사의 손가락으로 위치를 알아내면 오리 주둥이처
럼 생긴 겸자로 총알을 물고 빼낸 다음 각종 이물을 빼내기 위해 물로 씼어낼 수라도
있었죠.

그러나 깊게 들어가서 탐침이나 손가락으로 총알 위치를 알아내기 힘든 경우는 단순명
료하게 포기됩니다.
X선도 뭐도 없던 시절에 총알이 몸속 어딘가에 있는지 알아낼 방법 자체가 없었으니.

덕분에 총을 맞고도 가까스로 살아남은 사람, 특히 고참병사들은 죽는 그날까지 몸속에
총알을 간직하고 있는 경우도 있었다죠.

한편 총알에 의해 생긴 구멍은 화살보다 더 조치하기 곤란했습니다.
확실한건 이걸 단순히 봉합한다고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고 지혈과 함께 아물 때까지 봉
해두는 조치가 필요했죠.

화승총이 전장에서 활약하던 시절만해도 화약에는 독이 포함됐더라고 믿었으며 총알을
맞았으면 뽑아낼 수 있는한은 뽑아냈고 지혈을 위해 소작을 한 뒤, 거기다 나름 지혈
겸 상처 보호 조치를 취하긴 합니다.
문제는 그 보호조치라는게 차라리 안받고 만다는 소리가 나올 정도였던게 탈이었죠.

바로 딱총나무(elderberry) 기름을 끓이면서 약간의 당밀을 넣고 더 끓이다 붕대를 뜨
거운 기름에 담궈 베어들게 한 뒤, 바로 상처에다 대버리는 겁니다.
뜨거운 기름을 먹인 붕대를 가져다 댔으니 화상을 입는건 당연할 겁니다.

뭐 이 방법 자체는 화승총이 나오기 천여년도 더이전 로마에서 이미 써먹던 방법입니다
만 크게 개선된거 없이 사용된거죠.

아, 총상만 아니라 화약으로 인한 화상을 입는다거나 할 때도 이런 조치를 하기도 했다
죠.
가령 유지와 화약류를 넣은 단지가 터지면서 그걸 뒤집어 썼다든지 하면 걍 뜨거운 기
름 붕대를 덮었더라는.

이렇게 부상을 악화시키는 외과적 처방은 16세기 들어서 개선됩니다.
프랑스의 외과의, 아니 '이발사' 외과의인 앙브로아즈 파레(Ambroise Pare, 1510. ? ~
1590.10.20)에 의해서.

이 때만해도 외과의는 긴 옷을 입고 학구적인 내과의에 비해 기술자적인 면이 강했었고
이발사 조합과 같은 영역을 공유하던 시기였죠.
즉, 외과의는 의사로 대접받던 시대가 아니었다는 겁니다.

파레 역시도 이발사 겸 외과의로 도제 생활을 시작했고 가난해서 자격 시험조차 제대로
치르기 힘들 정도였다 하죠.
어쩌다 한 장군의 개인 의사가 되서 1537년의 토리노 포위 공격에 참전했을 당시, 파레
역시도 유서 깊은 뜨거운 기름에 적신 붕대로 환부를 감싸는 방법에 정통했었죠.

그런데 이 전투에서 파레가 준비해간 물품보다 더많은 부상병이 발생하자 파레는 부상
자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다떨어진 뜨거운 기름 대신 자신이 만든 연고를 사용하게 됩니
다.

'뜨거운 기름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계란, 테레빈 유, 장미유로 만든 연고를 사용할
 수 밖에 없었다.
 그날 밤, 나는 기름을 사용하지 않은 부상자들이 독이 퍼쳐 죽지 않을까 두려웠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연고를 바른 부상자들은 뜨거운 기름을 사용한 부상자들이 부어오
 른 상처로 고통스러워하는 것에 비해 편안하게 자고 있었다.'



17세기를 넘어서면서 총상과 같은 부상은 얌전하게 치료되기 시작했으며 지혈도 소작법
외에 혈관을 묶어서 처치하는 방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런 발전들은 얌전한 부위에 얌전하게 총알을 맞았을 때의 이야기지 뼈가 부숴
지고 박살났다든지 하는 부상은 자르는 방법밖에 없었답니다.

19세기까지의 어떤 풍경.

1. 육군 병사로 전투에 참전했고 대열속에 서있다 부상을 당했습니다.
   총에 맞아 팔이나 다리 뼈가 부숴질 수도 있었고 포탄이 팔다리를 통채로 뜯어날
   려 버릴 수도 있었으며 포도탄이 손만 잘라서 날려버릴 수도 있었죠.
   작게는 총알이나 파편에 의해 손가락 하나가 날아갈 수도 있었고.
   오히려 총검이나 기병창에 찔리고 기병도에 베인 상처는 가벼운 정도였죠.

2. 수병으로 작업을 하다 돛대에서 떨어져 골절 입었거나 혹은 뭔가에 깔려 팔다리가
   부숴졌습니다.

3. 민간인으로 마차에 치어 다리가 뭉게졌거나 팔이 부러져 개방 골절이 생겼습니다.

저런 경우 저 당시 의사들이 내릴 최후의 방법은 절단(amputation)이었죠.


1760년대, 절단 수술 방식.
다리의 경우 지혈대로 누르고 살을 베어낸 다음 톱을 넣고 썰어내며,
그런 다음 남은 살로 절단면을 감싸서 처리하죠.

지금이야 뼈를 맞추니 복원을 하니 여러가지 합니다만 저 때는 그럴 수도 그럴 생각도
없었답니다.
그렇다고 저런 상처를 그냥 내버려둬서 살 수 있냐면 그것도 아니었죠.
그러니 최후의 희망을 걸고 다친 부위를 포함해서 잘라내 버리는 수술이 선택됐고 저
때 외과의라면 이에 대해 어떤 의심도 하지 않아야 했답니다.
아니 오히려 최선을 다해 잘라내 주는게 옳은 행동이라 여겨지기도 했죠.

아닌게 아니라 저 때는 사지를 다친건 운이 좋은 축에 속했거든요.

만약 배에 구멍이 났거나 갈비뼈가 부숴지고 그게 폐를 찔렀거나 혹은 머리에 구멍이
났다거나 하면 전장에서는 보통 흔히 한구석에 조용히 치워졌죠.
살릴 방법이 없었고 당장 살릴 수 있는 다른 부상병을 포기해가면서까지 살릴 가치도
없었으니.

그런데 이 절단 수술, 생각보다 위험했습니다.
그나마 19세기 중반 이후로는 마취제가 등장했지만 - 전쟁중 마취제의 헤택을 잘본 전
쟁이 바로 남북전쟁 - 그 이전에는 아편같은 것에서 뽑아낸 뭔가 의심스러운 약제부터
술, 그마저도 없다면 납총알 따위를 입에 무는 정도 밖에 없었죠.

덕분에 외과의는 조수가 찍어누른 환자에게 최대한 빨리 수슬을 끝내야 했죠.
제대로된 마취제가 없으니 환자를 괴롭혀 죽일게 아니라면 최대한 빨리 칼로 살을 자르
고 톱으로 뼈를 썰어내고 지혈과 봉합을 해야했고 덕분에 절단 수술을 살자르고 톱질하
는데 5분내에 끝내면 그건 능력있는 외과의였죠. (톱질 자체는 1분내에 끝내야 한다고
강조됐다죠.)

아울러 이렇게 급히 해치우는 수술은 그만큼 환자가 출혈 과다로 죽을 확률을 낮추기도
했답니다.
18세기초만해도 절단 수술, 특히 다리 부분의 절단은 곧잘 과다 실혈로 인한 사망으로
끝났거든요.
왜 외과의가 5분내에 살을 자르고 뼈를 톱질하는데 5분내에 끝내고 어지간한 봉합도 끝
내야 하는지는 고통으로 몸부림치는 환자외에 실혈이란 문제가 겹쳤기 때문입니다. (뭐
지금이라고 여유만만하게 수술을 하는건 절대 아니지만 말입니다.)

그러다 1718년, 프랑스의 외과의(Jean Louis Petit)가 특히 출혈로 인한 사망 확률이
높았던 다리 부분의 절단시 허벅지 부분을 조여서 지혈할 장비 - screw tourniquet -
를 개발하며 이건 18세기 중반쯤 되면 외과의의 장비와 수련과정에 포함되게 되죠.


뭐 대충 요런 물건입니다.

다만 이 물건을 쓰면 꽉 졸리는 것에서부터 아주 고통스러웠고 서투르게 봉합하고 풀다
가 갑자기 솟아나오는 핏줄기에서 환자의 쇼크까지 겹친다는게 좀 탈이었지만 실혈을
막을 수 있다는 것에서 이정도는 그까이꺼 하고 넘어갔죠.

한편 절단 방식 자체도 18세기 들어서며 고급스러워(?) 집니다.

17세기까지만해도 절단은 말그대로 절단이었죠.
만약 종아리 부분을 다쳐 잘라내야 한다면 무릎뼈를 경계로 살을 자르고 뼈가 드러나면
바로 톱질을 시작해버렸으며 절단은 수직방향으로 이뤄집니다.

절단 자체는 빠르지만 수직으로 잘린 절단면을 봉하는 것 자체가 쉬운 일은 아니었고
뼈의 절단면이 드러난다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아, 드러난 절단면에서 혈관은 이전에는 인두로 지진다거나 해서 출혈을 막았지만 나중
에는 비단실이나 무명실 또는 동물의 건이나 말총 따위로 만든 봉합사(? 라 칩시다.)로
묶어서 출혈을 막게 되며 작은 혈관은 인두를 사용하거나 해서 조치했다 하죠.
그런 다음 절단면을 린넨 붕대로 막고 다시 울로 만든 덮개를 씌워서 조치합니다.

그러다 17세기말, 18세기 들어서면서 칼을 대각선으로 집어넣고 빙돌려 원뿔형으로 잘
라내고 톱을 넣어 뼈를 자른 뼈의 절단면을 살로 덮은 다음 누관(drain)을 끝단에 대고
살을 묶어버리는 방식이 나오게 되죠.


flap 방식
살을 비스듬하게 자른 다음 뼈를 드러내어 자르고 살로 덮는 방법.
간단하다는 점때문에 꽤 사용되었는데다 전장에서 흔히 사용됐으리라 추측되는 방식.
다만 환자를 이동시킨다든지 해서 절단 부분의 근육이 움직인다든지 하면 절단부의 괴
사가 더 빨리 벌어졌다나요.


circular 방식
원추형으로 도려내고 뼈를 자른 다음 살로 감싸버리는 방식.
flap보다 복잡하고 시간이 더 걸리지만 절단부의 괴사는 덜한 방식이라죠.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19세기까지 줄기차게 사용된 외과의의 도구 세트.
공구 셋트가 아닙니다.
의료 기구입니다.

어쩌건 고통스러운 절단 과정이 끝났고 상처도 잘 봉합됐습니다.
문제는 이걸로 모든게 끝난건 아니었더란거죠.

그 당시, 위생이란 면은 전혀 아예 고려되지 않았던 문제입니다.

'그자체가 부패(감염)하지 않지만, 그럼에도 감염을 촉진하기 때문에 감염을 일으킬 수
 있는 옷, 린넨 등등을 Fomites 부른다.'
--- 이탈리아의 철학자이자 시인이며 수학과 천문, 지리학자였던 Girolamo Fracastoro
    (1478 ~ 1553.08.08)
    Fomites : 라틴어로 부싯깃.
    3세기 넘게 세균이 등장하기 전 감염에 대한 이해의 초석을 쌓은 한마디.
    그러나 이런 이해가 3세기 동안 항상 통했냐면은...

의사의 손이나 탐침은 제대로 씼겨지지 않았고 그럴 생각도 없었는데다 수술칼이나 톱
이건 간에 마찬가지였죠.
상처를 씼는 물도 대충 어딘가 우물에서 길어왔을 수도 있으며 그조차도 흔히 여러번
사용됩니다.

그렇다고 수술후 누워있을 병상이나 상처의 조치가 깨끗하냐면 것도 아니었죠.
심지어 붕대조차도 제대로 교환하지 않았으니 말입니다.

이러니 수술후 감염이 안일어나면 그게 이상한 일일 겁니다.
수술후 한달을 잘 버티면 그나마 살아남을 확률이 증가하는거지만 이 기간을 넘기지 못
하고 묘지로 직행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았으니.


1775년, 성 토마스 병원(St.Thomas Hosp.)의 절단 수술


남북전쟁 당시의 절단 수술.
이 시기는 마취제(클로로포름)가 사용됩니다.
수술대(?) 아래에 놓여진 나무통은 절단된 다리를 담는 통.
큰 전투가 있으면 노란색 바탕에 초록색으로 H가 쓰여진 깃발이 날리던 야전 병원에는
저런 나무통에 잘려진 팔다리가 수북하게 쌓여졌었다죠.
그나마 이렇게라도 조치된건 다행이었습니다.
나폴레옹 전쟁중 군의관 라리에 의해 확립된 응급환자 분류(triage)에서 살릴 수 없는
부상을 당했다면 그저 한켠에 조용히 치워졌으니.

수술후 감염은 19세기 들어 교육받은 외과의와 마취제의 발전, 외과적인 조치에 대한
거부감이 줄어듬에 따라 수술이 증가하면서 자연스럽게 덩달아 증가하게 됩니다.
아니 수술후 감염같은 단어는 아예 없었으니 수술후 환자들이 무엇 때문인진 몰라도
하여튼 죽어 나가는데 환장하게 된거죠.

덕분에 이 때 의사들, 고름을 수술한 환자의 상태를 보여주는 척도로 보게 됩니다.
아니 갈렌(Claudius Galen, A.D 130 ~ 200 --- 아마도)시절부터 고름은 필요악 내지는
당연한 정도로 받아들여졌고 이게 2천년 정도 유지된 판이니 이 시기 의사들도 고름을
당연하게 받아들인건 놀라운 일도 아닐 겁니다.

드물게 고름도 없이 나아버리는 경우는 굉장히 운이 좋은 일이었고 상처 가장자리를 따
라 밝은 색의 고름이 나오다 상처가 아물기 시작하는걸 반깁니다.
오죽했으면 이런 고름에다 건전한(laudable)이란 수식을 붙일 정도였죠.

Pus was the most common subject of converse, because it was the most prominent
feature in the surgeon's work.
It was classified according to degrees ol: vileness.
"Laudable" pus was considered rather a fine thing, something to be proud of.
"Sanious" pus was not only nasty in appearance but regrettable,
while "ichorous" pus represented the most malignant depths to which matter
could attain.

고름은 외과의의 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일이었기에 흔한 대화 주제였다.
이것은 해로움의 정도에 따라 구분됐다.
"건전한" 고름은 뭔가 좋은 일이자 자랑스러워 해야했다.
"묽은" 고름은 보기 나쁘고 좋은 현상은 아니었다.
"장액성" 피고름은 가장 악성에 이른 불길하고 나쁜 것이었다.
--- Old Receiving Room, Sir Frederick Treves, 1st Baronet, GCVO, CH, CB
    트레브스 박사라면 엘리펀트 맨과 안소니 홉킨스로 더 유명하려나요?

아마도 요즘으로 치면 저 건전한 고름 - 진하고 누런 색 - 은 포도상구균에 감염된 것
이라 할겁니다.
화농이 국부적으로 벌어지려는 경향이 있고 몸속 깊은 곳까지 내려가려는 경향이 덜했
으니 말입니다.
대채적으로 빠르게 곪다가 농이 국소적으로 모이던게 터지고 그 후로 상태가 좋아져 아
무는게 빨랐으니 감염에 대해 감도 못잡던 19세기 의사들로서는 매우 반가웠을 겁니다.

이에 대해 묽고 녹색을 띄는 고름이 나오는데다 그와 함께 수술자국 주위로 붉은 발적
이 생기더니 곧 오한과 고열을 동반하면 이제 상황은 절대 좋은이란 소리가 안나오게
됩니다.

저 때만해도 단독(Erysipelas, 그리스어로 붉은 피부에서)과 같은 증상은 악몽에 가까
운 일이었죠.
오죽했으면 저 단독이란 말외에 Ignis sacer(라틴어: 신성한 불꽃, holy fire)니 성 안
토니의 불(St. Anthony's fire)과 같은 별칭이 붙었냐를 본다면 말입니다.

오늘날에야 저 단독이란게 연쇄상구균(streptococcus)에 감염되어져 림프절을 통해 하
는 식의 설명과 예방책, 페니실린부터 에리스로마이신(erythromycin)같은 항생제가 줄
줄이 나올 겁니다만 저 때는 수술 자국을 중심으로 발적이 엄청난 속도로 퍼지기 시작
하더니 곧 주변 피부가 급속히 붉어지고 이빨이 부딫힐 정도로 오한과 열이 나면 거진
죽는다 라고 봤죠.

조치법? 그런건 없었습니다.
적어도 1940년대까지만해도 단독이 나왔다면 사람 목숨이 진짜로 끝장난거죠. (이게 수
술해서 난 것이면 억울하지나 않지 면도하다가 칼에 베었다가 걸렸다 이러면 진짜 황당
하죠.)

그나마 여기까지는 살 수 있는 확률이라도 있었죠.
병원괴저(hospital gangrene)니 뭐니 하면서 회색 또는 검은색의 부패한 조직이 농처럼
나오기 시작하면 살릴 수 있는 확률은 없다고 봐도 무방했답니다.
오늘날이라면 혐기성 균이 포함된 다발적인 감염을 과격하기까지한 예방적 조치와 각종
항생제를 넣어서 해결할 일이었지만 저 때는 그저 신을 찾아야만 했죠.

더하여 이 악몽과 같은 감염은 그저 수술부위에서만 벌어진 일은 아니었죠.
패혈증 / 농혈증으로 커진다거나 별 연관이 없어보이던 파상풍이나 산욕열로 나타나서
병원에 살기위해 왔던 환자와 산모, 겨우 삶의 줄을 잡은 부상병들을 죽였으니.

이런 문제에 대해 당시 의사들은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지도 그에 걸맞는 예방법을 찾아
내지 못합니다.
항생제가 없었다라는 점을 제외하더라도 당장 의사 그 자신이 죽음의 손을 휘두르고 있
다는 것조차 몰랐었죠.

'치료는 매우 거칠었다.
 외과의사도 거칠었다.
 그는 마취제 없이 수술을 하던 시절, 고통에 냉담할 뿐만 아니라 거칠고, 강하고, 재
 짤라야 했던 시절의 태도를 답습했다.
 고통은 어쩔 수 없이 동반되는 것으로 질병의 유감스러운 측면이었다.

 수술실에는 겨울이나 여름이나, 또 밤이나 낮이나 항상 불이 켜있는 난로가 있다.
 그 물건은 엘리자베스 여왕 시대부터 했던 대로 지혈을 할 때 사용하는 인두를 달구
 기 위해 항상 불을 준비해 놓는 것이었다.

 마취제는 아직 사용되지 않았다.
 패혈증은 병실에서 일반적인 병이었다.

 사실 심각한 상처는 모두 곪는다고 볼 수 있었다.
 고름은 가장 흔한 대화의 주제였다.
 외과의사의 일에서 가장 눈에 띄는 특징이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해로운 정도에 따라 분류되었다.
 건전한 고름은 뭔가 좋은 것, 기뻐해야 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녹색빛이 나는 묽은 고름은 보기에도 좋지않을 뿐더라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장액성 고름은 가장 심각한 상태의 고름이었다.

 청결함은 아무래도 좋았다.
 아니, 다시 말하면 청결함은 어울리지 않았다.
 그것은 몹시 까다롭고 잘난 체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차라리 사형집행인이 머리를 베기 전에 손톱을 다듬는 편이 나았다.
 외과의사는 도살장을 연상시키는 검정색 프록코트를 입고 수술을 했다.
 그것은 몇년간 말라붙은 피와 오물로 인해 뻣뻣했다.
 코트가 더 많이 축축할수록 그 외과의사가 유능하다는 강력한 증거가 되었다.
 물론 나도 그런 코트를 입고 외과의사로서 첫발을 내딛었고, 그것을 상당히 자랑스러
 워 했다.

 상처는 기름에 적신 붕대로 감았다.
 기름과 붕대는 솔직히 말해 오염된 것이었다.
 붕대는 버려진 리넨에서 얻은 폐기된 면사의 일종이었다.
 아마 지금은 자동차 정비소조차도 차에 사용하기에는 너무 더럽다며 집어던질 것이다

 곪고 있는 상처 때문에 병실에서 나는 악취는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
 달갑지 않게 오늘날까지도 그 냄새를 쉽게 떠올릴 수 있다.

 병실에는 스펀지가 하나 있었다.
 그 악취나는 물건과 한 때는 깨끗했던 대야의 물로 하루에 두번씩 병실에 있는 모든
 환자들의 상처를 닦았다.
 이 때문에 환자가 회복될 가능성은 사라졌다.
 병원괴저로 모든 병실에서 많은 환자들이 사망했던 일이 기억난다.
 오늘날 학생들은 이런 병에 대한 지식이 없다. 본적도 없고 다행스럽게 앞으로도 보
 지 않을 것이다.

 사람들은 종종 말하곤 한다.
 외과 환자들이 그 시대에 살아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사실 그들은 살아남지 못했다.
 아니, 그들중 몇 명만이 살아남았다.

 내가 이 글을 쓰는 시기의 병원과 병원 일에 대한 일반 대중의 사고방식은 다음 사건
 으로 설명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어느 여인에게서 딸의 수술에 대한 허락을 받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 수술은 대단한 것이 아니었다.
 나는 응접실에 있는 여인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와 수술 과정에 대해, 내 생각에는 동정적이고 희망적인 어조로 매우 자세하게
 논의했다.
 대화를 끝내고 그 녀에게 수술에 동의하냐고 묻자 그 녀가 대답했다.

 수술에 동의하는건 좋지만 장례 비용은 누가 대죠?'

--- Old Receiving Room, Sir Frederick Treves, 1st Baronet, GCVO, CH, CB
    닥터스 / 의학의 일대기, 살림. 안혜원 옮김.

더 아이러니한 일은 병원에서 이뤄진 수술의 사망율이 더 높았다는 겁니다.
평균적으로 병원에서 이뤄진 수술에서 흔히 40% 이상의 환자들이 폐혈증과 같은 수술후
감염등으로 죽어갔으니 말입니다.

이런터라 마취제가 나왔음에도 수술은 절단 수술과 외부에 난 종양의 절제 정도로만 끝
납니다.
문제는 이런 수술마저도 그 결과가 심히 좋지 않았던게 탈이었죠.

'나는 내 운명이 그 수술에 달려있다는 생각에 충격을 받았다.
 그 수술을 하기 싫었다.'
--- 1820년, 죠지 4세의 두피에 난 피지낭(sebaceous cyst)을 수술했던 Astley Cooper.
    만약 저 간단한 수술에서 단독이 번졌다면 죠지 4세와 애틀리 쿠퍼 모두 19세기 의
    료의 어두운 면을 보여주는 사례로 남았겠죠.
    어쩌건 저 수술 자체는 무사히 끝났고 6개월후, 쿠퍼는 준남작(baronetcy)을 수여
    받았죠.

1860년 3월, 글래스고 병원에 외과의로 부임한 리스터(Joseph Lister)는 염증과 혈액의
응고를 연구하면서 종래의 의사들이 보였던 부패는 산소에 의해 일어나므로 수술중 조
직에 스며든 산소에 의해 조직이 파괴되고 염증이 나며 고름이 나오는건 자연스러며 그
래서 어쩔 수 없다는 태도에 의문을 가지게 되죠.


죠셉 리스터 경, 1st baron Lister.

만약 산소가 부패의 원인이라면 정상적인 육체 역시도 부패를 해야했지만 수술한 상처
에서만 그런 부패가 벌어진다는건 믿기 어려웠으니 말입니다.
이에 리스터는 상처의 부패에 산소가 아닌 다른 무엇인가가 끼어들었으리라 추측하고
그 무엇인가를 찾게 되죠.

한편 1856년, 루이 파스퇴르(Louis Pasteur)는 릴에서 주류 제조업자의 불평 - 주정 발
효중이던 원액이 시큼해지며 끈끈해져 쓸모없이 상하는지 - 을 해결하기 위해 연구에
착수하죠.
곧 파스퇴르는 효모균외에 다른 종류의 미생물이 발효에 끼어들면 술이 아닌 부패물을
얻어진다는걸 알게 되죠.

1859년, 파스퇴르가 발효에 대해 발표한 논문들을 살펴본 화학 교수 토마스 앤더슨(Th-
omas Anderson, 1819.07.02 ~ 1874.11.02)은 수술후 패혈증에 대해 고민하던 리스터에
게 파스퇴르의 논문을 읽어보길 권하게 되며 리스터는 미생물에 의한 감염을 실험을 통
해 확인하며 어떻게 하면 수술중 상처에 떨어질 미생물을 막을 것인지 생각하게 되죠.

그리고 곧 두피를 손상시키지 않고 머릿이를 죽이는 약처럼 상처를 손상시키지 않으며
미생물을 사멸할 뭔가를 찾게 됩니다.

마침 글래스고 인근의 칼라일에서 석탄산(carbolic acid, 페놀이라 하면 더 쉬울듯)을
사용해 하수구의 악취를 제거하는 것과 부가적으로 가축의 기생충이 박멸됐다는 것을
듣고 석탄산을 소독제로 사용해 보기로 작정하죠.

1865년 8월, 마차에 치어 뼈가 부러지며 다리를 뚫고나온 11살짜리 어린얘가 병원에 후
송되자 리스터는 석탄산에 적신 붕대를 바꿔주며 경과를 보게되죠.

6주후, 골절은 치료됐으며 감염도 고름도 없었는데다 환자도 죽지 않았죠.

이전같았으면 이런 류의 개방 골절은 곧잘 감염과 함께 뼈와 상처 주변에 다량의 고름
이 발생하다 자칫하면 죽음으로 끝났으니.

그 후로 환자들은 석탄산을 소독제로 한 붕대로 처치됐으며 곧 붕대만 아니라 수술중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모든 것에 석탄산이 뿌려집니다.
상처 주변, 수술대, 수술에 참여한 의사의 손, 수술 기구까지.
그리고 수술을 잠시 중단하고 석탄산으로 손을 씼고 상처는 석탄산을 적신 수건으로 닦
아 냈으며 수술후, 붕대도 석탄산에 적셔져야 했고 붕대를 교환할 때도 붕대는 물론이
고 상처까지 모두 석탄산으로 소독되죠.

'소독전 : 35명중 16명 사망
 소독후 : 40명중 6명 사망'
--- 1870년 1월자 란셋지에 기고된 리스터의 소독된 절단 수술 결과


1870년대의 석탄산 증기 분무기
석탄산(페놀)은 소독제로 효과적이었으나 당시 의사들이 싫어할만한 조건을 갖춘 물질
이었기도 하죠.
빳빳하게 풀먹인 컬러깃과 프록코트의 소맷자락을 흐늘거리게 만들었으며 손은 곧잘
붉게 변하며 물집이 잡히기도 했으며 자극적인 분무는 호홉기에도 좋지 못했죠.
무엇보다 리스터의 석탄산 소독법은 준비와 수술중, 수술후 과정 모두가 복잡했고 빠른
시간내에 수술을 끝내는걸 숙련의라고 여겼던 그 당시 의사들
에게는 복잡함을 떠나 터
무니 없는데다 효과조차 의심스러운 방법이었죠.

그런데 리스터의 소독된 수술법은 영국에서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의대보다 신학
대에 더많은 지원금이 보내지던 변두리 미국은 별도로 치더라도.)

리스터의 방식은 더없이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했는데다 비용이 더들어갔는데다 무엇보다
의사들 자신의 손과 자신이 걸친 모든 것이 환자를 죽였다는 것과 보잘것
없는 세균이 원
인이 됐을 것이란 생각은 하지도 않으려 했죠.


반면 유럽, 특히 독일 의사들에게 리스터의 방식은 빠르게 받아들여 집니다.
1870년의 보불전쟁을 겪으면서 실험적으로 리스터의 방법을 채택해본 경우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확실히 감염이 줄어들었으니 말입니다.

단적으로 야전병원에서 1만건의 절단 수술을 했더니 그중 대부분이 감염으로 죽었다는
결과를 얻은 의사라면 전혀 감염 없이 거의 대부분이 살아남은 결과를 얻은 의사를 눈
여겨 볼 수 밖에 없을 겁니다.

1875년쯤 되면 독일에서는 리스터의 방식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수술후 감염을 줄이며
1880년대쯤 되면 그 완고한 영국과 미국의 외과의들도 리스터의 방식을 적용하게 됩니
다.
완력으로 환자를 찍어눌러 급하게 수술을 해치우던 피와 고름에 전 프록코트를 입은 의
사 대신 16세기 파레가 말한 치유는 신의 소관이자 상처를 만드는 치료가 아닌 섬세하
게 짜여진 계획에 따라 절차를 밟으며 환자에게 부담을 덜줄려는 현대적인 의사가 등장
하는 계기가 도니거죠.

더불어 이 때쯤되면 치료법으로서의 소독법 대신 예방법인 무균법이 등장하게 됩니다.
애초에 원인이 될 균이 상처에 접근할 길을 막아버린 환경에서 소독을 통해 깨끗해진
환부를 수술하자는 것으로 발전하게 된거죠.

1884년에 무균실에 가깝게 환기 잘되며 소독된 수술실이 등장하며 의사들의 복장도 프
록코트가 아닌 소독된 가운과 모자를 쓰개 됐고 1886년이 되면 증기 멸균에 미국에서는
고무 장갑이 등장하게 되죠. (고무 장갑은 소독제로 쓰이던 승홍 용액에 의해 피부가
상하는걸 막기위해 등장하지만 이후 멸균처리된 상태로 의사의 손에 씌워지게 되죠.)

그리고 세월은 흘러...
1차대전이 발발하자 병사들의 군장에는 멸균된 붕대가 포함되며 더러운 손으로 부상자
를 만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되죠.


p.s:
앙브로아즈 파레는 전장에서 증명된 실력있는 외과의였는데다 진단 - 외과적 조치와 치
료 - 회복 - 예후에 대해 많은 경험과 날카로운 관찰을 겸비했었죠. (보철술 또한 좋았
던지라 오늘날에 근접한 방법으로 골절 환자를 처리했다고도 합니다.)


파레의 Opera Chirurgica중 보철법에 대한 장중 하나. 1594년.

그는 그런 경험들을 라틴어 대신 평이한 프랑스어, 그것도 구어체로 적었죠.

당시의 의사 - 내과의 - 들이 보기엔 무식함을 증명하는 일이었지만 쉽고 익숙한 말로
이야기하듯이 겸손하게 쓰여진 그의 책은 곧 프랑스만 아니라 독일, 영어, 네델란드어
로 번역되어져 퍼져 나가게 되며 외과에 대한 인식에 변화를 일으킵니다.

외과의가 의사와 기술자(이발사) 사이에서 천시되던 상황에서 외과의를 의사로 또한 확
고한 의학의 영역으로 자리 잡게 만드는데 한몫을 한 셈이랄까요.


p.s:
그나마 미국 남북전쟁후 두개골과 복부 부상에 대한 연구등이 진행됩니다.
특히 복부 부상에 대한 연구가 활발해지며 여기에는 마취제와 깨끗한 수술의 공이 클겁
니다.
그러나 20세기초만 해도 지금은 하도 오만병 다써본지라 병에 대해 이골이 난 드라마조
차 안써먹는 맹장염 수술이 저 때는 매우 큰 수술이자 목숨걸고 할 지경이었죠.
아니 1930년대나 1960년대만 해도 위험하다는 소리를 하던 동네도 있었답니다. (우리만
해도 1970년대까지 맹장염이 가벼운 수술 정도로 취급받진 않았습니다.)


p.s:
전쟁이 의학을 발전시키는데 나름 공헌을 합니다.

1차대전은 병사자보다 전사자가 더많아진 첫 전쟁이었으며 각종 수술후 생존율이 비약
적으로 올라갔는데다 무엇보다 이전에는 포기됐을 내장의 손산에 대처하게 됩니다.
수천년간 복막염으로 죽어갔던 병사들을 살리기 시작한 전쟁이었죠.

19세기까지만해도 복부에 총상을 입었고 그래서 복막염으로 번져나갔다면 그건 손쓸 수
가 없었던지라 복부에 부상을 입어 내장이 보이고 속의 내용물이 흘러나온거 같다 이러
면 그저 한켠에 치워두는게 나았다고 판단됐으니.

1차대전때는 아직 믿을만한 항생제는 없었지만 이런 북부 부상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게
됩니다.
생리 식염수로 세척하고 봉합을 하는 기술이 적용됐으니.

더불어 의족과 의수, 초보적인 안면 복원술까지 시도된 시기기도 합니다. (안면 복원술
은 이전에 비해 나아진 편이란거지 괜찮은 수준이라 하기는 어려웠죠. 덕분에 프랑스등
에서는 얼굴이 크게 망가진 부상병이 전후에 따로 외진 곳에 모여살았다든지 하는 이야
기를 만듭니다.)

아울러 1차대전은 수혈법이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시기였으며 수술에 대한 자신
감은 가스 괴저와 같은 증상에 대해 예방적인 조치 - 넓은 부분에 대해 절제를 하고 식
염수로 세척하는 - 를 가능하게 하죠.

2차대전에서는 흉부에 대한 부상에 대처하게 됩니다.
폐를 다친다는 것은 더이상 살기 힘든 부상이었으나 2차대전에서는 폐의 총상에 대처하
는 방법들과 수술로 처리하는 방법들이 자리를 잡게 되죠.

또한 수혈법은 더이상 의심할 여지가 없는 일이됐으며 소련에서는 수혈용 혈액의 확보
를 위해 군의관이나 간호원, 민간의 자발적인 참여가 애국심의 한 예로 인식될 지경이
되죠.
물론 미국에서는 혈장의 활용으로 많은 부상병을 구해내게 되죠.

한편 이제는 전염성 병자가 발생하면 그건 의료체계가 막장상태라고 평가될 정도가 되
버리죠.

한국전에서는 야전 병원에서 혈관 수술을 진행할 수준이 됐죠.

참고로 1차대전때만해도 야전 병원에서 할 수 있는 조치는 드물게 절단 수술을 할 정도
였고 많은 경우 그저 붕대를 감고 지혈하고 쇼크를 막기위해 담요를 둘러준 다음, 들것
으로 부상병을 후방의 침상이 있는 병원까지 이송한다는 것이었죠.

그에 대해 한국전에서는 야전 병원에서 어지간한 조치를 다 취한 다음, 후방으로 후송
보내 나머지 조치와 수복 또는 회복을 기다리는 정도가 됩니다.

월남전에서는 야전 병원에서의 조치에 더해 야전과 야전 병원, 후방의 군의 체계를 신
속한 후송으로 연결하여 이전에는 죽을 수 밖에 없던 부상자도 살려냈다는 평을 듣게
되죠.

지금은 외과적인 조치는 더이상 발전할 부분이 있을까? 라는 소리가 나올 지경인데다
이전에는 어쩔 수 없던 내지는 손쓰기 곤란한 부분들 - 가장 대표적인게 쇼크 - 을 잡
기위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죠.

이런 발전은 미군등의 이야기며 대한민국 군의료 체계는 예외로 칩시다.


p.s:
지금도 이전보다는 아주 양호해졌지만 감염되거나 혹은 의료 자원이 형편없는 상태에서
감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포도상구균(staphylococcus), 연쇄상구균(streptococcus), 혐기성 파포형성 간균이자
가스괴저, 산욕열, 파상풍등을 일으키는 clostridium, 녹농균(Pseudomonas), 살모넬라(
salmonella), 병원성은 없지만 대장균(Escherichia coli), 결핵균류(mycobacterium
tuberculosis), 폐구균, 신장 계통 감염으로 가는 비운동성 비아포성 neisseria 균속등
등이 감염을 일으키죠.


p.s:
간균에 의한 괴저는 한 때 전장에서 매우 유명해진 때가 있었죠.

프랑스와 플랑드르의 비옥한 흙은 농사짓기 좋았고 당연히 농부들은 더많은 소출을 위
해 거름을 줬으며 그 거름은 말과 소의 똥을 주로 사용하죠.
문제는 저 말과 같은 동물의 소화기에는 간균들이 득실댔다는 점이고 이게 배설물과 함
께 흙에 있다 누군가 다치면 그 상처속으로 들어갔다는 점입니다.

물론 평상시 농사짓는 입장에서야 이런 일이 아주 크게 문제가 될 것은 아닙니다만 저
기서 전투가 벌어지자 이야기가 달라져 버리죠.
부상자의 상처를 통해 간균이 들어갔고 거기서 이 혐기성 세균은 번식하며 저 당시 한
군의관이 표현한 대로의 증상을 나타냅니다.

'48시간이 지나면서 상처 부위가 부어오른다.
 그리고 상처가 벌어지며 상처의 표면 절반은 젤리같으며 나머지는 마른 괴상한 형태가
 된다.
 곧 부상당한 부위가 더욱더 부어오르며 회색에서 푸르스름한 색으로 변하게 된다.
 이 때 부어오른 환부에 손을 대보면 거품이 끓은 소리를 들을 수 있다.'

처음 가스 괴저가 관찰됐을 때는 이미 상처 소독 과정이 일상화됐으니 곧 나을거라고
생각하고 나뒀답니다.
그러나 상처 부위에서 갈색의 악취나는 고름이 나오면서 상처에 공기가 찬듯한 느낌이
들고 병사가 섬망과 오한등을 호소할 때면 살아 남는 부상자가 없을 지경이라 곧 양쪽
모두의 군의 체계에서 난리가 나게 됩니다.
그러다 프랑스의 한 의사가 과격하게 보일 수 있는 예방적인 수술법을 개발하죠.

상처난 부위를 예방적으로 도려내버리며 특히 괴저가 난다 싶으면 더욱더 확실하고 단
호하게 해당 부위를 제거해버렸답니다.
가령 엉덩이에 파편 하나가 박히고 거기를 통해 흙이 들어갔다면 볼거 없이 엉덩이 살
거의를 도려내는 경우도 있었다죠.
그런 다음 수술 부위를 식염수로 세척해대는거였죠.

영국군 기준으로 1차대전중 개방 골절의 6%, 부상의 1%정도가 가스 괴저로 발전했고 이
로 인해 공포의 존재가 됩니다만 그 후 전쟁에서는 더 나아진 조건과 응급 의료 체계로
인해 발생 확률이 줄어듭니다.

미군의 경우 2차대전중 0.7%였고 한국전 중에는 0.2%, 월남전 중에는 더욱 빨라진 후송
(헬기 포함)과 응급조치, 야전 의료 체계의 발전으로 0.002%가 발생했으며 포클랜드 이
후로는 서방측 군대치고 한건이라도 발생한 경우가 없게 됩니다.
걸프전의 경우가 대표적으로 아예 발생조차 한 적이 없다고 하죠.

단, 그렇다고 이 가스 괴저가 아예 사라진건 아닙니다.
평시에 모르고 넘어가다 어, 이상한데 하다가 팔다리 자르는 일로까지 커질 수 있죠.
이건 군인만 아니라 민간에서도 충분히 걸리고 난리날 수 있는 일이므로 작은 상처라도
만만하게 보고 넘어가면 안될 겁니다.


p.s:
Re-enter OTHELLO
  Not poppy, nor mandragora,
  Nor all the drowsy syrups of the world,
  Shall ever medicine thee to that sweet sleep
  Which thou owedst yesterday.

  양귀비도 맨드라고라도
  이 세상 잠오게 하는 어떤 약도
  어제까지의 단 잠을 그들에게 주지 못하리

--- 오델로 3장 3막, 책꽂이에서 찾아도 안보여서 때려맞춤. 아놔.

저기서 만드라고라는 mandrake로도 불리는 식물.
걍 뽑으면 비명 질러대고 그거 들으면 죽으니 개로 뽑는다거나 헤리 포터와 비밀의 방(
맞아요?)에 나온 것도 아니고 모 게임에 나오는 것도 아닌 걍 현생 식물입니다.


이런거 아녀요.

이전부터 약초로 사용된 물건이자 그 기록이 이집트나 성경에도 나오죠.



이건 이집트 벽화에 묘사된 레몬과 만드라고라 뿌리를 가져오는 여인네들.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
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 하였더라
--- 창세기 30:16, 합환채가 바로 맨드레이크

오래전에 이미 몇가지 수면 또는 진통 효과가 있는 식물이나 약물이 알려졌죠.
저 만드라고라도 거기 속한 식물입니다.
불면증이나 불안등에 곧잘 처방됐고 환각이 보인다는 소리가 나왔으니 거기서 다시 마
녀의 식물이자 마법의 재료처럼 보이게 된건 놀랄 일도 아닐 겁니다.

교훈 : 얘들 아무 약이나 먹이지 마라.

이미 양귀비, 사리풀(Hyoscyamus niger, 천선자)등이 사용됐으며 특히 이중 아편 - 덜
익은 양귀비 꽃몽오리에 상처를 내고 그 수액(눈물)을 받아 굳힌 - 은 고대에서 이미
잘 알려졌고 레테온(Letheon_이란 단어로 지칭되며 중세를 거쳐 근세까지 의학적으로
사용됩니다.

뭐 그러고보니 사리풀이니 이런 식물들 덕분에 가지과(Solanaceae)들이 한때 묘한 시선
을 받기도 했죠.
당장 흰독말풀, 맨드레이크, 벨라도나등의 잘 알려진 유독 식물들이 여기 속했고 이 덕
분에 토마토와 감자가 대접이 팍팍했죠.
담배나 고추속 식물이 환영을 받은 것에 대해서 차별이다 싶을 정도로 말입니다.

'1 데나리우스만큼의 양귀비의 눈물에 몰약, 후추를 각각 2 데나리우스 혼합한 알약은
 고통을 덜어주는데 좋다.
 (아편)알약들은 그 쓰임새가 다양하며 그냥 먹어도 졸음을 유발한다.
 적포도주와 소량을 먹으면 귀앓이가 멎으며 배앓이도 멎는다.
 밀랍과 장미기름, 사프란과 혼합하면 외음부의 염증 치료에 좋다.'
 --- 셀수스(Aulus Cornelius Celsus, ca. 25 BC ~ ca. 50)

* 데나리우스 Denarius, 로마의 은화.
  4.5그램 정도의 무게. 그러나 후대로 가면서 은 함량이 점점 낮아져 3.9그램에서 3.6
  그램대까지 낮아지기도...

물론 알코올도 사용됩니다.
이미 히포크라테스가 의료 행위를 하던 그 시절에 결석 수술등을 하기 전에 독한 술을
권하라는 소리가 나오던 판이었으니.

'I will not cut for stone, even for patients in whom the disease is manifest;
 I will leave this operation to be performed by practitioners, specialists in
 this art.'
--- 히포크라테스 선서(?)의 원문.
    저기서 I will not cut for stone 이 결석 수술 내 맘대로 안하겠다는 소리입니다.
    회음부를 절개해서 방광을 거쳐 결석 제거하는 짓을 저 때 했고 당연하게도 환자는
    고통의 비명과 수술후 사망은 드물지 않았고 다행이 살아남아도 자칫하다간 여생을
    지린네 풍기며 살 수 밖에 없었다고 하죠. (수술한 곳으로 줄줄 세는 일도 생길테
    니...)
    물론 돈이 되니 저런 무작스런 수술하자고 덤빈 의사의 주머니는 묵직해질테고 이
    게 과연 윤리적이며 좋은 의사냐에 대해 비판이 가해질 법도 한겁니다.
    즉, 저 구절을 현대적으로 바꾸면 다음과 같겠죠.
    '돈 때문에 환자 몸에 니 맘대로 칼질 하지 말고 아무거나 처방하지 마라.'

자, 이런터라 생각보다 저런 마취약 또는 수면제에 대한 묘사가 세익스피어같은데서도
등장하는 겁니다.
로미오와 줄리엣에서만 해도 왠지 마취약을 묘사한듯한 설명이 나오죠.
줄리엣에게 로렌스 신부가 오래전에 아는 방법인디, 약을 만들어 먹으면 죽을줄 안다
라고 하는 4장 1막을 본다면 뭐. (씨댕, 찾으려고 하니 마비노기가 왜 나오나?)
물론 불행하게도 머리에 피도 안마른 두 커플은 오해로 진짜로 죽지만 말입니다.

그런데 이런 발전 가능성은 중세를 거치며 묻힙니다.
아니 아편제나 이런건 남아서 약으로 사용됐지만 수술이나 산고를 덜어주는데는 적극적
으로 활용된건 아닙니다.
수술이야 19세기전만 해도 굉장히 위험도가 큰 처방이었으니 그러려니 해도.

더욱 흔히 사용된 편인 알코올은 마취가 되기까지 적당한 양을 잡기가 쉽지도 않았으며
고통을 줄인다는데 효과가 좋았던 것도 아닙니다.
적게 먹이면 오히려 흥분제처럼 작용해 환자에게 더 큰 고통을 주기도 했고 그러하고
많이 먹이면 술많이 먹였을 때 벌어지는 모든 짜증스러운 일들이 줄줄이 발생하게 됐으
니.

18세기를 거쳐 꿈과 희망(?)의 19세기로 오며 몇가지 발견이 이뤄집니다.
그런데 이런 발견이 항상 정방향으로 간건 아닙니다.

죠셉 프리스틀리는 1772년, 아산화질소를 발견했고 - 치과등에서 홉입 마취제로 사용되
죠 - 험프리 데이비는 마취제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을 설명했죠.
또한 그 자신이 사랑니를 뽑으면서 생긴 잇몸 염증의 고통을 아산화질소를 마심으로 해
소할 수 있다는걸 체험하기도 합니다.

* 프리스틀리나 데이비 둘 모두 화학사에서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들이죠.

만약 데이비의 실험에 누군가 진지하게 주목을 했었다면 18세기에 아산화질소가 홉입
마취제로 사용됐을 수도 있었겠지만 그 누구도 이걸 잡아내지 못합니다.
심지어 그 가능성을 연 프리스틀리나 데이비조차도... (의사가 아니었으니 별 수 없었
겠지만서도)

웃기는건 이 시기, 저 아산화질소는 소기(laughing gas)란 이름으로 마취제가 아닌 파
티의 분위기 띄우기에 사용됩니다.

한편 이 때쯤되면 에테르들이 합성되기 시작합니다.
이미 16세기경 황산과 독한 포도주 추출물(알코올)의 혼합물을 증류하면 향기로운 황산
(바로 에테르, 디에틸에테르)이 나온다는 것이 알려졌지만 묻혔다가 18세기 말쯤 되면
다시 합성되기 시작합니다.
저 때 '유황 에테르'(sulfuric ether)라 불린 잘 휘발되는 액체도 아산화질소와 비슷한
효과를 가진다는게 알려졌고 이젠 놀랍지도 않게 그저 여흥용 약품으로 사용될 뿐이었
죠.

그러다 19세기 들어서 미국에서 에테르와 아산화질소를 마취제로 사용하는 시도가 이뤄
지며 1840년대가 되면 더 새로운 마취제인 클로로포름이 등장합니다.

이런 배경 덕분에 남북전쟁중 군의관들은 부상병의 코에 클로로포름을 적신 가제를 1분
정도 덮어뒀다 반항못하는(?) 환자의 팔과 다리를 잘라낼 수 있었죠.

아울러 이런 미국에서의 마취제 시도는 거기 참여한 4명 모두에게 크나큰 상처를 안겨
주게 되죠.
누가 먼저 마취제를 사용했는가? 를 두고 치고 박았으니 말입니다.

그 4명.
- Crawford Williamson Long (1815.11.15 ~ 1878.06.16)
- Horace Wells (1815.01.21 ~ 1848.01.24)
- William Thomas Green Morton (1819.08.09 ~1868.07.15)
- Charles Thomas Jackson (1805.06.21 ~ 1880.08.28)

아마도 저중 크로포드 롱이 제일 나은 삶을 살았을 겁니다.
적어도 죽기 전까지 의사일을 한데다 - 아이를 받다 뇌졸중으로 죽게되는데 산모와 아
이부터 돌봐라고 하며 쓰러진 후 죽었다죠 - 죽은 후, 미 국회의사당의 National Stat-
uary Hall에 그의 전신상이 서있으니 말입니다.



이렇게 19세기에 들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마취제들은 곧 유럽에서 빠르게 받
아들여졌고 의사들과 화학자, 약학자들은 재빨리 다른 마취효과가 있는 약물들을 찾아
내기 시작하죠.
물론 이 덕분에 수술은 이전보다 덜 부담스러운 일이 됐고 외과의(Surgeon)의 이미지도
달라지게 되죠.
뭐 리스터가 소독법을 정착시키기 전에 감염으로 사람 여럿 잡으셨던건 별 수 없었지만
서도.


--- 프랑스 잡지 Le Charivari에 실린 에테르의 혁신적인(?) 사용법(?) 1847년경


p.s:
손을 깨끗하게 씼는 것만으로도 환자를 덜 죽일 수 있다는 것을 리스터 이전에도 알아
낸 사람이 있었죠.

산욕열(puerperal fever)에 대한 것은 히포크라테스 시절에도 나왔던 이야기입니다만
이게 본격적으로 표면에 떠올라 문제를 일으킨건 19세기 들어서입니다.
이전처럼 집에서 얘를 낳는게 아니라 병원에서 얘를 낳게 되면서 더욱.

이에 대해 미국의 올리버 웬델 훔즈(Oliver Wendell Holmes, 1809.08.29 ~ 1894.10.07)
가 1843년에 산욕열 환자를 진찰하고 손을 안씼은 의사는 산욕열 진찰을 하면 안된다와
옷도 갈아입어라는 주장을 했다가 무시 당합니다.
의사 자신이 죽음의 원인이 됐다는걸 인정하긴 어려운 문제였으니.

한편, 헝가리 출신(오스트리아)의 이그나츠 필립 젬멜바이스(Ignaz Philipp Semmelweis
1818.07.01 ~ 1865.08.13)는 당시로선 최대 규모를 자랑하던 빈의 산과 병동에서 근무
하게 됐고 여기서 묘한 현상을 발견합니다.
의대생의 실습 과정을 지원하던 1병동과 조산부 교육 과정을 지원하던 2병동에서 각기
다른 산욕열 감염 결과가 나왔으니.

1병동
1841년 (사망 237 / 출산 3,036) * 100 = 7.8%
1842년 (사망 518 / 출산 3,287) * 100 = 15.8%
1843년 (사망 274 / 출산 3,060) * 100 = 9.0%
1844년 (사망 260 / 출산 3,157) * 100 = 8.2%
1845년 (사망 241 / 출산 3,492) * 100 = 6.9%
1846년 (사망 459 / 출산 4,010) * 100 = 11.4%

2병동
1841년 (사망 86  / 출산 2,442) * 100 = 3.5%
1842년 (사망 202 / 출산 2,659) * 100 = 7.6%
1843년 (사망 164 / 출산 2,739) * 100 = 6.0%
1844년 (사망 68  / 출산 2,956) * 100 = 2.3%
1845년 (사망 66  / 출산 3,241) * 100 = 2.0%
1846년 (사망 105 / 출산 3,754) * 100 = 2.8%

이 놈들이 무슨 짓을 한지 모르지만 의대생이 손댄 1병동의 사망율이 더 높게 나온
겁니다.
그리고 이 원인을 찾아보니...

1. 해부 하다가 그 손 고대로 안씼고 가서 진찰
2. 산욕열 걸린 환자 주무르던 손 안씼고 다른 환자 진료
3. 기타 하여튼 손 안씼음

1947년 3월 13일, 젬멜바이스의 절친 콜레츠카(Jakob Kolletschka)가 사망합니다.
병리학자이자 의사였던 그는 부검중 의대생의 실수로 칼에 찔리게 되고 그 때 입은
상처로 사망하게 되죠.
친구의 사체 부검을 보던 젬멜바이스, 친구가 죽은게 산욕열과 동일했다는걸 알고 그가
가진 의문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누구든 손에서 시취가 나는 사람은 진료하지 마라와 염화칼슘 용액으로 손을 씼
어라는 규칙을 만듭니다.
그 결과는 산욕열로 인한 사망율을 절반 이상 확 줄여 1%정도까지 내려보내게 되죠.

좋은 발견을 하게 됐으면 발표를 하는건 당연지사, 그런데 그 당시의 의사들이 보이던
태도를 꺽는데 실패합니다.
아니 되려 젬멜바이스만 또라이 취급을 받게 되고 그가 쓴 논문은 누구도 거들떠 보지
않았고 의사로서의 길도 전혀 순탄하지 못하게 흘러갔죠.

결국 앞선 그리고 그닥 어렵지 않는 해결법을 생각한 선구자 젬멜바이스는 47세에 정신
병원에서 쓸쓸히 죽어갑니다. (그가 막으려 했던 산욕열로 죽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만 이에 대해 알츠하이머중 조로성 치매로 죽었다라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오스트리아의 50 유로 동전에 세겨진 젬멜바이스


p.s:

조셉 리스터의 아버지 조셉 잭슨 리스터(Joseph Jackson Lister)는 퀘이커 교도이자 성
공한 주류 상인이자 아마추어 과학자로 색수차가 없는 현미경 렌즈를 개발하여 19세기
현미경의 발전에 큰 획을 그었으며 같은 퀘이커 교도인 호지킨(Thomas Hodgkin)과 함께
현미경을 사용하여 혈액, 특히 적혈구를 연구하죠. (호지킨은 그의 이름을 딴 악성 림
프종 Hodgkin's disease에 이름을 빌려주죠.)

이런 아버지 덕분이었는지 리스터 역시도 현미경을 사용한 혈액 연구를 시작했으며 역
시 현미경으로 시작한 파스퇴르의 연구를 수월하게 받아들이게 되죠.

한편 리스터는 또 다른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바로 장선(catgut)의 사용과 고무로된 배액관의 사용이죠.

이중 몸속에서 녹는 장선은 이전 시대에도 사용했으리라 보는 방법입니다.
서기 100년경의 갈레누스(Claudius Galenus)도 사용했다고 보니.

그러나 혈관을 묶어서 지혈하는 방법 자체가 시대에 따라 사용됐다 안됐다 하던터라 크
게 흔적을 남기지는 못한거죠. (앙브로아즈 파레가 혈관을 묶어서 지혈하는 방법을 알
아냈다라고 합니다만 파레 역시도 다른 외과의가 알아낸 방법을 검토하고 사용하며 기
록으로 남겼다고 보죠.)

여튼 18 ~ 19세기, 봉합사라면 대부분 비단실이나 은과 같은 금속, 말총등을 사용합니
다만 이들은 비홉수성이며 나중에 상처가 아물면 뽑아내야 하는 부담이 있었죠.
그나마 상처가 곪아 뽑기 쉬운 상황이면 괜찮지만 그러다 묶어둔 혈관이 풀리기라도 하
는 날에는 자칫하면 출혈 과다로 죽는 경우가 생겼으니.

리스터는 라켓이나 바이올린등에 사용되던 장선을 사용하며 일주일만에 몸속에서 홉수
된다는 것과 크롬산으로 처리하면 홉수 속도가 느려진다는걸 알아냅니다.
그리고 지금도 합성 재료로 만든 봉합사가 나오는 와중에서도 간혹 리스터가 쓴 것과
비슷한 장선을 쓰는 경우가 있죠.

그러고보면 상표명에도 리스터의 이름을 사용한게 있긴 합니다.
바로 양치액인 리스테린(Listerine)


덧글

  • 위장효과 2012/02/13 19:43 # 답글

    오죽하면 언급하신 켈수스의 책에서 외과의의 덕목으로 "환자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차 있어야 하나 동시에 냉정해야 한다. 그래야 환자의 비명소리에도 무감각해진 상태로 모자라거나 너무 지나치지 않게 재빨리 환자의 환부를 잘라낼수 있기 때문이다."라고 해놨을까요.

    소작과 결찰의 싸움질은 사실 21세기 현재에도 진행형이긴 합니다^^;;;. 그리고 비단실은 지금도 가장 중요한 봉합사로 사용중이죠. 뭐 나일론도 많이 쓰이고 합성봉합사도 종류가 워낙 다양하긴 하지만요.
  • 위장효과 2012/02/13 20:37 #

    추가로, 저 butterfly bandage의 경우에는 가운데 환부가 닿는 곳을 라이터등으로 살짝 그을려주는 식으로 소독해주면 더 좋다는 건 팁.
    3M에서는 butterfly를 대체하는 제품을 아예 상품화해놨지만요.
  • KittyHawk 2012/02/13 19:56 # 답글

    현대의 탄생 이라는 책에선 한국에 현대적인 위생체계가 잡혀가는 과정을 다루고 있는데 한국전 초기에 자주 절단시술을 하는 한국 의료진에 대해 미국 의료진이 비웃음을 보냈을 정도였는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숙련도가 높아졌고, 부상병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쏟아져나오다시피하는 기생충들을 처리하는 것만으로도 곤혹스러워하다가 그조차도 시간이 지나자 거의 만성이 되어서인지 아무렇지 않게 하나하나 꺼내면서 수술을 속개했을 정도였다는군요.
  • Nine One 2012/02/13 20:04 # 답글

    좋은 글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부러진 화살의 촉이라든가 화살 뽑으려다 화살촉만 빼고 쏙 빠졌을 때도 같은 방법을 쓸까요? 궁금합니다.
  • 문제중년 2012/02/15 09:42 #

    화살촉의 깊이에 따라 달라졌을 겁니다.

    그나마 이쪽은 화살대가 붙은 경우가 곧잘이라 찾기는
    비교적 쉬운 편이라지만 미늘같은게 달려있다면 깊이에
    따라서는 답이 없다는 소리가 나왔다고도 하죠.
  • KOOLKAT 2012/02/13 20:36 # 답글

    좋은 글 읽고 갑니다. 괴저가 그렇게 쉽게(?) 발생할수 있었다는데 대해서는 경악을 금치 못하겠네요.
    그런데 단순한 베인 상처가 아니라 살점이 덜렁덜렁거리는 상처의 경우에도 동일한 치료법을 사용했을까요?
  • 문제중년 2012/02/15 09:40 #

    봉할 수 있고 덮을 수 있는 범위내라면 어떻게 처치를
    했다지만 안그럼 이쪽도 치료는 신의 소관으로 두고
    봤다는 소리가 있다고 하죠.

    게다가 만약 괴사가 벌어질 지경으로 간거라면...
    이거야 제거를 하냐 안하냐를 떠나 과연 그렇게 할 시
    간이 있느냐가 관건이 되겠죠.
    언제나 그렇지만 환자는 많고 의사는 적은데다 군의는
    더더욱 그러니 말입니다.
  • 에르네스트 2012/02/13 21:31 # 답글

    페니실린의 처음 실전이 중간에있는 면도하다 베인거가 감염된 경우였다고하죠 기적적인 효능이 나왔는데 양이모잘라서 지속적으로 투여를못해서 다시 도지는 바람에 결국 사망했다던...
  • 천하귀남 2012/02/13 21:42 # 답글

    누가 뭐라고 하거나 말거나 통계와 현대의학 만세입니다. ^^;
  • 늄늄시아 2012/02/13 22:42 # 답글

    "수술의 역사"라는 책이 생각나네요. "무균법이 많은 사람을 살렸다." 는것...
    근데 당시 무균법의 처지방법이 참 후덜덜한것 같습니다. 석탄산이라면.. 페놀인데, 그 독한걸.. -ㅁ-;; 나중에 염화 제2수은으로 바꾸었다고 하는데, 이것도 인체에는 으악!!

    그래도 당장 세균감염으로 죽지 않았으니 감지덕지였던것 같아요.
  • 존다리안 2012/02/13 23:34 # 답글

    지금도 외과병원은 은근 무식한 장비가 많은데 (톱이나 드릴은 보기만 해도 무섭더라구요) 옛날은 아주 심각했군요

    흥미있는 건 로마제국 시대의 의학기구는
    현대의 그것과 상당히 닮았다는군요 의외
    로 수준도 높았고...
  • KittyHawk 2012/02/14 00:24 #

    제국의 붕괴로 인한 혼란기가 발전의 성과를 크게 후퇴시켰던 걸까요? 존다리안님 언급을 접하니 참 아이러니하다는 감이 듭니다.
  • 행인1 2012/02/13 23:41 # 답글

    젬멜바이스는 어찌 보면 너무 앞서나간 선구자였을지도 모르겠군요.(그래도 그렇지 정신병원행이라니!)
  • 45acp 2012/02/14 03:09 # 답글

    석탄산은 전염병 방역에도 많이 쓰였더군요. 특히 석탄산 을 쓰기 시작하던 때에 막 유행하던 콜레라 균의 방역 같은 거에도 효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다만 일본도 비슷한 시기 콜레라 방역을 위해 대량의 석탄산을 살포했지만, 이걸 갖고 콜레라의 병독을 양인들이 뿌리고 다닌다고 오해한 만중들에 의해 폭동이 나거나, 심지어 의사가 살해당하는 경우도 많았던 모양입니다.
    소독 처리법 앞에 놓인 장애물은 의사들의 고정관념만이 아니었던것 같습니다.
  • 문제중년 2012/02/15 09:37 #

    석탄산은 한 때 크레오소트와 함께 소독제의 대명사처럼
    사용된 적이 있었죠.
    악취가 나겠다 싶은 곳에는 어김없이 뿌려댔다니 말입니다.

    그 후로 표백분등이 나오며 한풀 꺽였지만 가정용으로까지
    널리 사용된 것이니 말입니다.
  • 오월 2012/02/14 09:45 # 답글

    재작년에 겪은 일이 생각 나네요. 발가락을 다쳤는데, 그때 대충 지혈만하고 끝냈던게 세균감염이 되었는지 살이 썩는 악취와 고름이 나오고 살이 검게 변색되면서 물에 불린것처럼 통통 부어올랐었죠. 결국 끓인 손톱깎이(..)로 불어버린 살 조직을 다 뜯어내고 과산화수소로 소독하고 거즈로 감쌋던 생각이 나네요.
  • 2012/02/14 11:3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문제중년 2012/02/15 09:32 #

    퍼가시는건 언제든지 편하신대로 하시면 됩니다.
  • 갸리 2012/02/15 10:45 #

    감사합니다! ㅇㅂㅇ!
  • 瑞菜 2012/02/14 13:18 # 답글

    30년 전쟁시기 전장에서의 부상은 상처 주위에 화약을 뿌리고 불을 당겨 지지는 방법도 썼다 하더군요.
    상처를 지져서 출혈을 막겠다는 것인데 그 바람에 저승간 사람도 많다 들었습니다.
  • 망아지 2012/02/14 16:14 # 삭제 답글

    지금도 윗사진의 외과기구세트와 거의 비슷한 세트가 사용중입니다...

    정형외과 쪽으로 가보면 거의 동일한 톱과 끌과 망치와 심지어는 전기 드릴까지 있습니다....

    예전에 만나본 정형외과 사람들의 말로는 자신들을 공사장 인부에 비교하더군요.....

    톱질에 망치질에 드릴질에.....

    그리고 정형외과 쪽 의사분들은 한덩치들 하십니다.....

    이유인즉슨 예전에는 (마취시대이전에는) 사람잡으려면 보통의 체격과 체력으로는 어림없었고

    마취가 시작된후에는 사람잡고 있어야되는것은 아니지만 저런공구들을 미세하게 다루고

    수술시간 오래걸리는데다가 뼈를 맞추는 과정에서 들어가는 힘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군요....

    그래서 지금도 정형외과에서는 인턴 선발할때 체격을 많이본다고 합니다....
  • 문제중년 2012/02/15 09:20 #

    하드웨어 만지는 것이야 힘과 기술이 양립되는
    곳 아니겠습니까.

    진짜 정형외과 쪽은 그걸 여실히 보여주는 곳이고
    도구도 힘과 기술을 요하는 것들이 많더군요.
    아마 광선검 나오면 두말않고 살 곳중 하나일지도.

    그러고보니 개인적으로 뇌와 두개쪽으로 가니 섬세
    할거다라는 예측과 달리 도구중에서는 석공을 방불
    케 하는거 보고 좀 쫄았달까요.

    그러고보면 요즘 마우스만한 두개 천공기를 들고
    두개골에 구멍을 낸 이전 시대의 의사들도 참 대단
    했던 사람들일 겁니다.


    p.s:
    어디선 봤던 이야기지만 어느 법의-검시의가 그랬
    다더군요.

    외과와 관련된 힘이 필요한 모든 도구와 필요하다면
    주방용 도구까지 쓸 수 있는 곳이 내가 하는 일이다.
    라고...

    p.s:
    아마도 주변에서 가장 쉽게 의료 분야에서 힘과 기술을
    필요로 한다는걸 느낄 수 있는게 치과일겁니다.
    특히 발치같은 경우에.

    이빨 튼튼한 사람이 힘없는 여자 의사분에게 걸리면 것도
    꽤나 고생하죠.
  • 천랑성주 2012/02/14 17:10 # 답글

    좋은 글입니다
  • 빤스지기 2012/02/14 19:33 # 삭제 답글

    갈레누스는 황제 주치의를 했지요
    당시 군의무실 유적을 보면 원시적인 소독방법. 수술도구를 끓이는 작은 화로가 있었다고 합니다.
    AD9년
    토이토브르커숲에서 전멸한 3개 로마군단의 유적을 1980년대 이후 발굴햇을때 완전 새거인 수술도구들이 발견됐죠 이것을 현재 의대교수에게 보여주였더니 그중 거의 반의 사용법을 알려주고 현대의 이름을 말하는 장면을 다큐멘터리에서 봤습니다.

    클로로포름은 사람에 따라 급사하는 경우가 생겨서 나중에 사용이 중지된거로 압니다.

    남북전쟁 당시 부상치료의 생존률을 높이려고 연구한다는 것이
    뼈에 염증으로 죽은 것이니 부상부위의 뼈를 다 제거 한다는 결과가 나왔고
    팔에 총맞으면 그 팔의 뼈를 모두 제거해버립니다.

    그리고 이것을 부상 치료후 살아난 사람들의 사진을 찍은 것을 본적이 있는데...........................
    뼈가 없는 팔(축 늘어진 살)을 다른 손으로 들고 있는 흑백 사진..
    지금 생각해도 오금이 저린...-_-
  • 문제중년 2012/02/15 09:31 #

    1. 그리스 - 로마 시대 의학이야 이미 외과수술하던 판이라서
    수술 도구가 저정도였다는건 그리 놀랄 일도 아니죠.
    뭐 산부인과의 질경까지 있던 판인데요.

    2. 클로로포름이 부정맥을 일으키며 죽게 만드는 것이야 20세기
    들어서면서 확실히 알려져 ACE 혼합같은게 나왔어도 일치감치
    사라지죠.
    뭐 이걸 마취제로 꽤나 쓴 남북전쟁과 그 이후 시기에도 종종
    죽는 경우가 있더란 소리가 나오던 판이었으니.

    3. 그 당시 절단 범위에 대한 예.
    종아리 부분에 맞은 경우 - 관절위 무릎에서 절단
    허벅지에 맞은 경우 - 심한 경우 고관절에서 절단 시작.

    절단 사진은 amputation정도로 찾으심 이전거나 지금거나
    꽤 있습니다.
  • 도오 2012/02/14 22:51 # 답글

    손발이 오그라드는 포스팅이였습니다.
    잘봤습니다.
  • RuBisCO 2012/02/15 04:24 # 답글

    뭐 그래도 괴사성근막염 같은건 정말 현대에도 무시무시하죠. 사람 한명 순식간에 이승에 안녕을 고하는 질병이니.
    이렇게 보면 중세 판타지 같은 세상이 얼마나 암담할지 점점 더 확실하게 상상이 가네요.
  • 시쉐도우 2012/02/15 20:19 # 답글

    오늘도 치과에서 치근단절제술과 같은 옛날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을 것 같은 치료를 받고 온 입장에선

    여러번 동의하게 되는 포스팅입니다. 그나저나.....

    '이런 발전은 미군등의 이야기며 대한민국 군의료 체계는 예외로 칩시다.'<=여기선 역시 OTL..

    그런데 페놀이라고 하면 예전에 낙동강에 방류되어서 논란을 일으켰던 바로 그 물질...아닙니까? @,@;;

    석탄산이란 용어에 익숙해서 한번 써먹어 본 적은 있습니다만, 그게 바로 페놀이었을 줄은 몰랐습니다.

  • 망아지 2012/02/15 20:56 # 삭제 답글

    하여튼 한국군의 의료체게는 좀 개선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의무병으로 2000년에 제대를 한 저로서는 정말로 나올때까지 한숨밖에 안나왔습니다.

    야전병원 세울때쓰는 야전 조명장비와 수술보조장비(주로 무영등이나 간이수술침상등입니다)는

    저보다 더 연로하신분들인데다가 제가 군생활하는 동안 딱 한번 보관함에서 꺼내봤습니다....(쓸줄아는 사람이 하나도 없더군요...ㅡ,.ㅡ)

    게다가 일반병원에서 흔히쓰는 기도경(기도확보시 필수 장비입니다), 에어튜브(카테터라고도하는 기도에 집어 넣는관이죠)

    중심삽관용 카테터바늘(쇄골동맥에서 심장까지가는 플라스틱바늘입니다. 응급상황시 필수 입니다)들이 없어서

    항상 군의관님이 병원에서 의무대로 위치이동해다주었고

    일회용으로 쓰이는 수술장갑도 몇번이나 소독해서 쓰고는 했습니다....

    제발 예산편성하는 양반들은 보이는곳(전투기나 탱크들은 돈쓰면 티 팍팍 나는곳이나 팍팍 사제낍니다)만 신경쓰지 말고

    이런곳들도 신경써줬으면 합니다....

    한국군 전투화가 20년만에 새디자인이나오고...

    월남전때 수통이 새것으로 돌아다니고.....

    개발된지 20년이 넘는 총으로 무장을하고....

    월남전때 쓰던 베낭이 개량도 안되어 아직도 쓰이고....

    나보다 나이많은 장구류들이 튀어나오고.....

    뭔가 문제가 있기는 한겁니다....
  • 루드라 2012/02/16 02:38 # 답글

    예전 어느 서양 다큐에서 현대 문명에서 절대 버릴 수 없는 딱 한 가지를 고르는 설문을 하는데 제일 많이 득표한 게 현대의학이더군요. 저도 동감이었습니다.
  • 2012/02/16 22:21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쉘쇼커 2012/02/19 06:32 # 삭제 답글

    -저 screw tourniquet, 요즘 미군이 잘 쓰는 CAT나 SOF tourniquet의 시조 즈음 되는 물건인가보네요. 딱봐도 원리는 똑같은 것 같고..

    -전에 선생님한테서 들었는데 각 전쟁별로 '유행하는' 부상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예를 들어서 요즘 아프간에 간 병사들이 제일 많이 당하는 부상 중 하나가 IED로 인해서 팔이나 다리를 하나 잃는 것 처럼 1차대전 당시에는 참호전에서 참호 밖을 보겠다고 머리만 빼꼼하고 보다가 얼굴에 총알을 맞는 일이 많아서 로베스피에르 마냥 얼굴은 맞았는데 '헤드샷'이 아니여서 얼굴 부상당하고 온 병사가 많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본문에 언급하신 초보적인 안면 복원술도 발전했지만 그 상처를 가리기 위한 가면을 만드는게 1차대전 전후로 은근히 많이 발전/유행했다고 들었습니다.

    -이미 로마 시대부터 군의관들이 도구를 소독하고 청결을 유지하는 규율이 있었으나 암흑시대랑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이게 흑역사마냥 사라졌다는 이야기를 어디서 들은것 같기도...
  • .......... 2012/02/19 08:36 # 삭제 답글

    경험담을 하나 적으면요, 누님 친구(여의)가 하는 치과가서 사랑니 발치중...마취 후 잇몸째고 깨다가 갑자기 누님친구분 왈 "야 이거 더 못하겠다 대학병원가라" 결국 아버지 아는분 하시는 구강외과전문의에게 가서 짼자리 또쨌죠. -_- 긍정적인 부작용이라면 한달동안 피맛을보다가 자연스럽게 금연에 성공했다는거.

    로마군 관련은 월광토끼님의 블로그에 한번 나왔죠.
    http://kalnaf.egloos.com/3168557
  • 2012/02/19 15:33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너구리 2012/02/22 00:21 # 삭제 답글


    저희들은 뭔가 굉장히 행복한 시대에 살고 있다는걸 느끼게 해주신 포스팅이었습니다.
  • Origa 2012/02/26 12:10 # 삭제 답글

    문제중년님께 질문이 있습니다. 따로 여쭤보고 싶었지만 이메일 주소같은걸 모르니 염치불구하고 최근글에 댓글 답니다.


    1. AR계열 소총의 완충기는 연사속도를 낮추는 기능이 있냐?

    2.M4의 경우 사속을 줄이기 위해 완충기를 개량한적 있냐?

    이 두가지 입니다. 전에 이 문제로 지인과 논쟁헀기에 문제중년님께 속시원하게 답좀듣고싶습니다.

    부탁드립니다. 기왕에 저 위의 말들이 맞다면 관련자료도 좀.... 부탁드립니다.
  • 문제중년 2012/02/26 20:27 # 삭제

    1. 당연하게도요.
    노리쇠 뒤에서 같이 움직이는 놈의 질량이 변했는데
    발사속도가 안변하면 그게 이상한거죠.

    그리고 이건 발사속도를 조정하는 것외에 총이 작동
    부에 제공하는 동력의 양에 따라서도 달라질 수 있는
    부분이죠.

    쉽게 말해 똑같은 동력으로 1kg짜리 물체와 2kg짜리
    물체를 똑같은 마찰저항이 걸리는 면에서 움직일 때
    같을리 없죠.
    그겁니다.

    M16A1/A2, M4의 완충기만 해도...

    M16A1이나 A2의 경우는 속에 5개의 원기둥 모양 강철제
    무게추가 들어가고 추가적으로 완충기 앞쪽으로 스페이서가
    더 들어가서 대략 3.5 온스정도 무게를 가지죠.
    (강철제 무게추 사이에 고무?등으로 만든 원판 모양의 패드가
    들어갑니다. 덜거덕대지 말라고.)

    전체 무게는 5.1온스 정도.

    한편 M16A1 시절에 분당 900발의 속도는 너무 빠르다고 분대
    지원화기쪽으로 해서 분당 600 ~ 700선의 발사속도를 가지게
    하려고 더 무거운 완충기가 보급된 적도 있었죠.
    물론 이건 월남전때 이야기고 실험적이었죠.

    이게 아마 6.5온스던가 그럴겁니다.

    M4의 경우는 강철제 무게추 3개 들어가고 1.95온스 정도,
    전체 무게 3온스 약간 넘었죠.

    뭐 이쪽도 무게추만 2.7온스나 3.5온스짜리 더 무거운 완
    충기를 쓴 경우도 있습니다.


    2. M4는 일단 M16A1이나 M16A2 완충기와 다른거 씁니다.
    그리고 이 물건의 경우, 일반적인 물건 말고 좀 더 무거운
    완충기를 쓴 경우가 있죠.

    가장 간단하게 손댈 수 있는 부분이니.
    (뭐 미국같이 개인이 인터넷으로 부품 사서 바꿔 끼우는 짓이
    가능한 판이면 그거야 뭐...)

    이거 관련해서는 H1 buffer와 H2 buffer로 검색을 해보시길.

    참고로 H1 버퍼는 M4 완충기속에 든 3개의 강철제 무게추중
    하나를 텅스텐제로 바꾼 겁니다.
    H2는 2개를 텅스텐으로 바꾼거고.

    그리고 이에 따라 발사속도 달라지죠.
  • 왕의친구들 2012/02/28 19:16 # 삭제 답글

    주제가 거의 호러틱 합니다만, 잘읽고 갑니다.
  • 2012/03/02 14:27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문제중년 2012/03/06 21:16 #

    관련해서는 우선 특허법에 대해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미국 특허법의 경우는 우리도 미국하고 장사하는 경우가
    꽤있다보니 관련해서 금방 나올 겁니다.
    미국 특허법 정도로 검색해도 나올 겁니다. (우리 나라 특허법
    과 다른 부분도 꽤있고 세계 유일무이한 조항도 있습니다.)

    일단 특허의 경우 미국이나 우리나 20년 갈겁니다.

    물론 중간에 갱신(?)이라 해야하려나?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서
    늘려줄 수 있고 특허권을 소유한 쪽이 피 양도인인 경우가 대다수
    죠.

    여기에 상표권과 같은 다른 권리도 추가하고 해서 가질 수 있죠.

    1의 경우는 특허권 소멸된 상황이면 그대로 따라가건
    뭘하건 그건 알아서 할 문제입니다.
    다만 상표권과 같은 다른 권리는 피하는게 좋겠죠.

    2는 특허가 살아있냐 없냐, 그 특허받으려는 항목이
    어느정도 객관적으로 특출하냐를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기에 따라 특허법(과 관련 법규)에 따라 비용을
    지불할지 자신의 권리로 인정받을지가 갈리죠.

    더하여 특허 자체가 기계 자체가 아니라 각종 방법이나
    악세사리같은 식의 것도 받을 수 있으므로 살을 주고 뼈를
    얻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디자인도 가능)

    혹은 아예 우린 별개거든 하고 피해버리는 방법도 있죠.
    (단, 이런 경우는 분쟁을 피하기 힘든 경우가 꽤 생긴다죠.)

    그러니 더욱더 자세한 사항은 미국 특허법을 검색하셔서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그럼 왜 제가 이 질문 자체에 대해 두리뭉수리하고 부정확한
    데다 답이 될 수 없는 문장만 나열했는지 이해되실 겁니다.
  • 한가지 2012/03/10 10:21 # 삭제 답글

    응급의학과 전공의입니다
    오프라 잠시 들렀는데 관련 주제라 반갑군요 ^^;
    제가 전공하는 분야가 아무래도 외상과 관련이 많다보니 전쟁을 통해 발전한 학문이라...
  • 아포테케리 2012/03/11 23:26 # 삭제 답글

    흥미있는 글 잘 봤습니다.

    감염과 항생제에 대한 역사에 관해서 알기쉽게 다룬 다큐를

    히스토리채널에서 방영한바 있습니다. HC 현대문명, 놀라운 이야기, 항생제

    입니다. 비전공자분들중에 흥미있으신 분들은 보시면 꽤 재미있을 겁니다.
  • KittyHawk 2012/04/01 02:10 # 답글

    굉장히 늦게 다는 리플입니다만, 본격적인 산업화 이전의 절단 시술을 묘사한 삽화 중에 아예 환자의 특정 부위에 밧줄 등을 묶고 그걸 말이 끌게 만드는 것을 보고는 적잖이 놀란 적이 있었습니다. 이런 방법을 사용한다면 위험이 분명 따를 텐데 그 당시엔 그 위험을 어떻게 관리했는지 궁금해지더군요...
  • t 2012/04/04 11:27 # 삭제 답글

    남북전쟁당시 이야기에 바로 생각난 영화가 늑대들과 춤을... 이미 부상당한 병사는 어떤 처치를 받는지 아는 쥔공이 의사를 붙들고 사정하죠. 절대 자르지 말아달라고...
  • 이라 2012/04/09 20:28 # 삭제 답글

    우아아... 대단하십니다...
    실로 감탄밖에 나오지가 않네요...
  • csk1071 2012/04/10 11:30 # 삭제 답글

    외과학 강의를 해야 하는데 많은 참고지료가 되었습니다... 감사..
  • 드로이드 2012/04/22 15:18 # 답글

    엉덩이에 종기가 난 적 있는데, 그중 하나를 무심코 건드렸더니 푸욱 터지면서 회색, 흰색, 검은색의 고름과 시커먼 피가 막 쏟아져 나오고 종기는 그냥 살껍데기가 되어서 덜렁거리더군요. 그게 '나쁜 고름'이라던 죽은 살 조직이었을까요.ㄱ-;
  • 2012/05/10 18:26 # 삭제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煙雨 2012/10/04 13:06 # 답글

    현대에 태어나 사는게 정말 축복인거 같습니다...헐...
  • 한스 2012/12/21 02:23 # 답글

    그리스-로마 시절 문화나 기술이 쭉 중세내내 이어져 왔다면 어떨까 싶어요
  • ㅇㅇ 2016/04/10 17:01 # 삭제 답글

    약대생인데 저 감염균들 외울게 정말 많군요. 균에 따라 항생제가 다른 경우가 있어 전부 외워야 하는데 라틴어라 더 힘들군요. 여튼 비슷한 증상에 원인 균이 여러가지이니 의사들이 몇가지 항생제를 때려박는 것도 이해가 가더군요. 특히 개인병원 같은 경우에는 감정시설도 없다시피하고...

    수술후 감염문제는 저때보다야 훨씬 나아졌지만 아직 꽤 큰 문제이거니와 저기서 진균류까지 들어가니 머리가 터지겠습니다.

    이렇게 정리해주신 문제중년님의 지식에 감탄이 나올 뿐 입니다.

    ps. 죄송하지만 질문하는 게시글을 다시 파주실 수 있으십니까? 200개가 넘어가니 모바일에서 보기에는 너무 많아서 새로 파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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