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대전의 정밀 저격총, 휘트워스

19세기 들어서며 총 역시도 기술발전의 특혜를 받게 됩니다.


1. 동일 부품을 사용한 제조법
   조면기를 만든 엘리 휘트니(Eli Whitney)는 호환되는 부품을 사용한 총기 제조를
   생각하게 됩니다.
   단, 이 아이디어가 엘리 휘트니 고유의 것인지는 이견이 있습니다만 중요한건 그가
   어찌되건 간에 1만정의 머스킷 생산 계약을 1798년에 따냈다는 점이겠죠.
   그리고 이 머스킷 생산에 호환부품과 공정의 사용이 고려됐다라고는 합니다.
   그 후로는 일사천리, 콜트와 같은 19세기 이름 좀 있던 총기 회사들이 채택하게되며
   1850년대가 되면 총을 만드는데 있어서 상식선의 일이 되죠.
   총은 더이상 장인들의 손에 따라 다른 성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한 라인에서
   나왔다면 거의 비슷한 성능을 가지게 됩니다.
   여기에 이미 진행중이던 탄약류의 표준화와 맞물려 총의 성능 역시도 표준화가
   이뤄지게 되죠.
   아울러 이 방법은 총외에 다른 공산품의 생산에도 적용되며 마침내 20세기 들어서
   자동차에까지 사용되면서 미국식 생산방법은 전 세계로 퍼지게 되고 심지어 공산주의
   소련까지도 감동시키게 됩니다.


2. 강선
   이제 강선은 더이상 비싸서 총신에 집어넣기 힘든 존재가 아니게 됩니다.
   19세기 들어오며 강선은 많은 총기에 적용되게 되며 군대의 사격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꿔야할 필요까지 만듭니다.
   문제는 하드웨어의 개선에 대해 소프트웨어의 개선은 늦어졌다는 점일 겁니다.


3. 새로운 총알
   라이플이 일반화되면서 아직까지는 전장식이던 라이플에 장전하기 쉬운 총알의
   개발이 이뤄집니다.
   델비엥(Henri Delvigne)이라든지 그리너(Greener), 노턴(John Norton)과 같은
   사람들이 그런 총알을 개발해냈으나 최종 승자는 미니에(Claude Etienne Minie)였으며
  그의 총알은 크림 전쟁과 미국의 남북전쟁에서 눈에 띄는 효과를 거두죠.
   미니에 탄과 라이플의 조합은 400야드 거리에서 사람을 맞출 수도 있다는 이야기와
  함께 맞으면 사망, 운좋으면 절단이다라는 소리가 나오게 했으니. (그 당시 속설중에는
  미니에 탄에 맞으면 사람몸은 물론이고 그가 메고 있던 배낭까지 깨끗하게 관통한 후,
  다시 뒷사람을 한번 더 관통한다는 소리까지 있었죠. 그보다는 이 총알에 제대로
  맞았을 때 생기는 끔찍한 상처가 더 공포심을 가져왔을 겁니다.)


4. 뇌관((primer, percussion cap)
   1800년, 하워드(Edward Howard)에 의해 수은, 질산, 에탄올로 합성된 뇌홍(Mercury
   fulminate)은 곧 뇌관용 기폭제로 사용되게 되죠.
   그 결과 부싯돌 격발식의 지긋지긋한 불발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100발 발사중 10번넘게 불발되던 브라운 베스와 1천발중 1번 불발된 새로운
   영국군의 뇌관식 소총의 차이처럼.


5. 탄도학
   총과 대포에 강선이 적용되면서 명중률이 올라갔고 더높은 명중률을 얻어보자는
   것에서 탄도학이 본격적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런 발전의 와중에 저기 영국에서 잘맞는 총이 하나 등장하게 되죠.
그리고 이 총은 영국군에 채용되지는 못하지만 미국에서 전설을 만들게 됩니다.


1864년 5월 9일, 스팟실베니아 코트 하우스(Spotsylvania Court House)에서 남군의
왼쪽 측면을 공격하던 북군 6군단을 독려하기 위해 군단장 세지윅 장군(Maj.Gen. John
Sedgwick)은 부하들에게 다음과 같이 외칩니다.

'제군들, 적의 총알이 여기까지 날아올 것같은가? 난 자네들이 부끄럽다네. 그들은 이
거리에서 코끼리도 못맞출걸세.'

그리고 그 직후 어디선가 날아온 총알 한발이 그의 왼쪽 눈을 통해 명중했고 그는
말위에서 떨어졌죠.


그는 남북전쟁중 죽은 가장 고위급 장교였으며 세미뇰 인디언과의 전쟁부터 멕시코와의
전쟁, 유타 전쟁등을 거친 역전의 용사였지만 한발의 총알 - 아마도 남군
샤프슛터(Sgt. Grace, 4th Georgia Infantry 소속)가 쏜 것으로 짐작되는 - 에 의해
절명합니다.
그의 죽음이 그랜트에게 전해졌을 때 그랜트는 진짜 그가 죽었는가 라고 되물을
정도였다 하죠.


그날, 누가 어떤 거리에서 어떤 총으로 그를 쏴는지에 대해서는 이견이 분분합니다.
다만 그날 그곳에 망원조준기가 달린 휘트워스를 든 남군 샤프슛터가 있었고 그가 꽤
높아 보이는 양키 장교를 상당히 먼 거리 - 일설에는 900야드이상 - 에서 쐈다는
것에서 아마도 휘트워스가 그를 죽였으리라 추측하기도 합니다.


위의 일이 비록 추측이라해도 실제로 휘트워스 라이플은 400야드이상에서 목표를
명중시킬 수 있는 우수한 소총으로 정평이 난 것은 분명합니다.
이번 잡설의 주인공은 바로 휘트워스 라이플에 대한 겁니다.


19세기 영국에 조셉 휘트워스 경(Sir Joseph Whitworth, 1803 ~ 1887)이란 분이
계셨죠.
이 분은 그 당시 정밀공작과 표준에 대해서 꽤 이름이 높던 분이며 아마도 나사라든지
정밀공작기계류와 측정장비등에서 이름을 들어보신 분도 계실 겁니다. (참고로 이
시기, 선진기술강국은 영국이었죠. 기계부터 화학까지 모두. 오늘날의 독일정도
되려나요. 그런데 19세기말을 기점으로 후발주자 - 다르게 말하면 그 때까지 듣보잡 -
독일에게 털린데다 1차대전 기점으로 독일마저도 촌놈 미국에게 털리니 어쩌니 하다가
소련까지 영국과 독일 후장턴다고 덤벼댄거보면 세월무상이랄까.)


1853년, 영국 정부는 이미 정밀공작에 대해서 이름높던 그에게 라이플 공장을 꾸려줄
수 있냐고 제안합니다.
정밀기계로서의 총을 만드는데는 정밀 공작이 필요했고 거기서 누가 이름값이 높던가를
본다면 당연히 수순일 겁니다.


이 제안에 휘트워스는 아예 이미 사용중이던 577구경 패턴 1853 엔필드 라이플을
대신하면서 더 우수한 성능을 가진 물건을 만들 작정을 하게 됩니다.


곧 그는 독특한 강선과 독특한 총알을 사용하는 라이플을 내놓게 됩니다.


휘트워스 라이플의 강선 단면과 거기 사용된 총알을 묘사한 겁니다.

휘트워스의 총구 부분으로 육각형 단면이 잘 보일 겁니다.


오늘날 폴리고널 라이플이니 뭐니 하는 것보다 무려 100여년도 더 전에 이미 저런걸
개발한거죠.

허기야 폴리고널 라이플링이란 놈도 19세기말 영국의 메트포드가 만든 강선 시스템과
연관이 있습니다.
메트포드의 강선은 리의 탄창과 노리쇠 시스템에 결합되어 리 메트포드 라이플로 영국군에
채용되다 나중에 개량?을 거쳐 리 엔필드 라이플로 가게되죠.
단, 이 때쯤에는 메트포드 강선은 사라집니다. 만드는데 돈이 더 들었거든요.


육각형 단면을 가진 휘트워스 강선은 좀 더 단단한 납합금으로 만들어지며 그 당시의
미니에 볼등에 비해 강선에 부딫히며 변형된다든지해서 총구를 떠났을 때 명중률을
깍아먹으려는 경향이 덜한 총알과 짝을 이루게 됩니다.
물론 총알 모양도 그 당시의 다른 총알들보다 확실히 공기역학적이었죠.


대신 이런 긴 총알 덕분에 휘트워스 강선은 다른 라이플들에서 흔히 사용되던 1회전
30인치보다 더 짧은 1회전 20인치 회전을 하게 됩니다.

또한 휘트워스는 당시의 정밀 사격용 총기들(target rifle로 곧잘 불린)의 총열에 비해
같은 길이에도 더 가벼웠다 하죠. (당시 타겟 라이플중에서는 총열 무게만 9kg을 넘는
것도 있었습니다. 덕분에 총전체 무게가 11kg을 넘는 것도 있었죠. 휘트워스는 가벼운
축에 들어가며 총열 무게가 4kg정도 됩니다.)


당시 미국스타일의 타겟 라이플
크고 묵직한 총열이 총의 대부분을 차지했고 덕분에 총 자체 무게도 무거웠다는.



이렇게 등장한 451구경 휘트워스 라이플은 1859년의 테스트에서 기존의 엔필드보다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게됩니다.
그리고1860년, 빅토리아 여왕이 보는 앞에서 밴치 래스팅된데다 방아쇠를 별도로
당기는 도구를 사용해 400야드의 표적을 깨끗하게 명중시킵니다.


이건 현대의 밴치 레스팅(bench resting)
밴치 레스팅은 장거리 사격과 연결되기도 하며 개중에는 특별히 총을 이에 맞춰서
개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더 무겁고 정밀하고 비싼 총열에 무겁고 덜 뒤틀리고 잘 처리된 총상에 별도의 레스팅
툴에 방아쇠까지 당겨주는 기계등등에 돈을 쓰기도 하죠.


그러나 이런 성능과 기술적 우위가 항상 시장에서 승리할 수는 없다고 휘트워스는 군에
적극적으로 도입되지 못합니다.


무엇보다 문제는 꽤나 비쌌다는게 탈이었죠.
그 당시 사용되던 엔필드보다도 4배이상 비쌌다 하니. (비교적 쌀 때 휘트워스 1정당
가격이 10파운드를 넘었다 하죠.)


여기에 장전이 더 어려웠고 한발 쏘고 지겹께 끼어대던 흑색화약의  잔재를 처리하는데
휘트워스의 독특한 강선은 더 불편하다는 소리를 듣게 됩니다.
게다가 총열 마모가 더 빠르게 일어난다는 평도 듣게 되죠.


정밀함도 좋지만 무엇보다 일제 사격과 일제사격을 통해 얻어지는 화력에 몰두하던 그
시절 분위기상 이런 점이 마음에 들기에는 어려울 겁니다.


결국 영국군은 패턴 1853 엔필드를 대신할 총으로 휘트워스를 채택하지 않았고 대신
가격이 저렴하면서 기존의 엔필드를 고대로 컨버젼할 수 있는데다 발사속도면에서 더
우수한 후장총 스나이더 엔필드(Snider-Enfield rifle)를 채용합니다. (스나이더
엔필드의 개발자인 Jacob Snider는 네델란드계 미국인으로 필라델피아에서 주류
상인이었다 하죠.)


그리고 영국군에 채택되지 못한 휘트워스는 군용보다는 민간용 타겟 라이플로 팔리게
되죠. (단, 프랑스군이 소수의 휘트워스를 사갔다는 이야기는 있습니다.)


한편 이 시기, 영국과 대서양으로 떨어져 있던 미국에서는 북부의 연방과 남부의 제주
동맹이 연방의 존립이냐 분리냐를 두고 남북전쟁(Civil War)을 벌이게 되죠.


이 때 남군측에서 약 100 ~ 250정 정도의 휘트워스를 구매합니다. (150정 정도로 보나
연구자에 따라서는 250정까지도 보긴 합니다.)
이 휘트워스들은  당시 바닷길이 모두 봉쇄당한 남부의 입장덕에 매우 비싼 가격에
판매됐다 하죠.
대략 정당 600 동맹 달러(Confederate States of America dollar)이상이었고 여기에
탄약 1천발에 데이비슨 스코프(Davidson telescopic sight)가 포함되면 1천 동맹
달러였다죠.
요즘 돈으로 두리뭉수리하게 변환하면 1만 5천달러 이상의 돈에 해당하긴 합니다.


참고로 이 때 남부는 휘트워스만 아니라 다량의 영국제와 벨기에 총기를 구매합니다.
물론 그걸로도 전쟁 수요를 모두 감당할 수 있는건 아니었죠.
북부의 뉴욕이 남부 전체가 생산할 수 있던 공업능력을 커버할 정도로 공업능력이 없던
남부의 입장으로서는 별 수 없는 일이었던 셈이죠.


'남부인들이여,
 당신들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소.
 이 땅이 피로 젖고 어떻게 끝날지는 신만이 아실 것이오.
 (중략)
 그건 그렇고 그들과 전쟁을 하기위한 당신들의 인력과 물자는 어디있소?
 북부는 당신들이 만드는 천이나 신발짝과 다른 증기 엔진, 기차, 화차를 만드는
 능력이 있소만.
 당신들은 세상에서 가장 강력하며 우수한 기술을 가졌으며 단호한 인간들과 전쟁을
 하려하고 있소.
 (후략)'
-- 전쟁전 테쿰셔 셔먼이 남부의 친구들에게 한 말.


이렇게 소수만 수입된 휘트워스는 실력있는 남부의 샤스슛터들의 손에 들려 장거리
저격총으로 꽤 큰 효과를 나타냅니다.


휘트워스의 구조 자체는 사실 그 당시 흔히 사용되던 뇌관식 라이플 머스킷(rifle
musket)들과 그리 다른건 없습니다.

휘트워스나 Parker-Hale Volunteer 라이플의 구조도입니다.
아주 단순한 구조고 사실 저 당시 쓰던 라이플 머스킷들의 구조는 거기서 거기입니다.


사용법도 똑같은 식으로 장전됐고 똑같은 식으로 발사됐죠.
발사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총구 부분과 뇌관 장착 돌기(nipple)등을 주의깊게 점검합니다.
   특히 돌기속의 구멍이 막혀있다 생각되면 침으로 뚫어줄 필요가 있습니다.


2. 휘트워스의 탄약은 그리스 먹인 종이 혹은 펠트로 만든 대롱 모양의 통속에 총알과
   화약이 들어간 페이퍼 카트리지입니다.
   카트리지를 까내보면 제일 앞에 그리스 먹인 종이에 감싸인 총알이 있고 그 뒤에 85
   그래인의 화약이 들어있죠.
   이런 탄약의 뒷부분을 헐어서 흑색화약을 총구로 부어넣습니다.


당시의 페이퍼 카트리지 몇종과 구리로 만든 캡(뇌관, 동화모 銅火帽)


3. 530그래인에 451 구경의 길다란 독특한 총알을 총구로 밀어넣고 장전봉으로 쳐준 뒤,
 

4. 공이치기(hammer)를 절반정도 잡아당겨 해프콕(half-cock) 상태로 만든 다음,


5. 돌기에 구리로 만든 뇌관을 꼽습니다.


6. 목표를 조준하면서 공이치기를 완전히 뒤로 당겨 풀 콕 상태로 만들고 조준이
   끝나면 방아쇠를 당기면 됩니다.


7. 발사후 돌기에서 뇌관을 때내고 재장전을 합니다.


기타 - 총알은 공장에서 생산된 것도 있습니다만 보통 휘트워스에는 총알 찍는
틀(mold)이 들어있습니다.
이걸 가지고 납을 녹여 부어 총알을 찍어낼 수 있었죠.


이건 데이비슨 조준기의 부착 모습입니다.
총의 왼쪽면에 달려지며 그림 보시면 아시겠지만 조준기의 상하 편차 조정은 조준기
자체를 움직임으로 조정하게 됩니다.
이걸 위해서 조준기의 앞쪽에 구리로 만든 작은 각도 표시판이 달려있죠. (표시 각도는
12도 범위내)
조준기의 배율은 4배율이며 뒷쪽의 접안부(아이피스)를 잡아 빼내거나 밀어넣어 촛점을
잡을 수 있습니다. (구조는 당시에 사용되던 망원경 생각하세요.)
오늘날 기준에서 보자면 광학적 성능부터 뭐하나 제대로 된 것은 아니긴 하지만 저 때
이미 저런 망원 조준기들이 사용되고 있었죠.



p.s:
북군 역시도 샤스슛터를 운영했고 어떤 면에서는 남군보다 좀 더 보병과 차별을 두려는
시도를 합니다. (은근히 영국적이며 마치 영국군의 그린 재킷 95 라이플 연대와 비슷한
면도 있습니다.)
남군의 경우는 샤프슛터들을 좀 더 보병처럼 쓰려는 경향이 강했다하죠.
여튼 이들 샤프슛터들의 목적은 적의 주요 목표 - 장교와 포병 - 을 조용히 만든다
였습니다.

특히 포병의 제압은 중요한 목표였고 이는 당시의 야전 화력중 가장 큰 위력을
발휘하며 보병 대열을 엄호하고 지원한다는 점을 본다면 저격으로 포를 못쓰게
만드는게 어느정도 중요한가 감이 잡힐 겁니다.



p.s:
한편 휘트워스는 후장식 강선포의 개발에도 뛰어들어 2.75인치 12파운드 포까지
개발합니다.
이 '휘트워스 라이플'은 사거리가 10km정도였고 그의 라이플처럼 육각형 또는 다각형
강선에 그에 들어맞는 포탄을 사용합니다.
문제는 역시나 가격이 좀 나갔다는게 탈이고 결국 영국군은 암스트롱포를 구매하죠.


덕분에 휘트워스 라이플은 이번에도 미국에 판매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남부가 아니라 북부가 이 포를 사갔죠.


이 그림은 휘트워스의 후장포이며 포탄, 폐쇄기 부분등의 묘사를 보실 수 있을 겁니다.
(2.75인치 12파운드 휘트워스 포를 궂이 '휘트워스 라이플'이라 표기해서 이 잡설의
주인공인 휘트워스 라이플과 혼동을 준 이유는... 딴게 아니라 저 시대에 강선포도 그저
라이플로 불렸더라는 것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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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남북전쟁 - 피해의 원인 2009/07/24 17:54 #

    그리스 인들은 전쟁의 신이 둘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테네는 명예롭고 영광스러운 전쟁을 주관하고 아레스는 전쟁의 참혹함과 비참함을 주관했고, 두 신중 어떤 신이 주관하느냐에 따라 전쟁의 성격이 바뀐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느 전쟁이건 다 그렇지만 내전은 특별히 참혹하고 그 중에서도 남북전쟁은 아레스가 전담하기라도 한 듯이 막대한 희생을 내면서 지지부진하게 길어졌습니다. 남부와 북부 모두 1년내로 끝나리라 예상했던 전쟁은 5년간 60만명이 사망하...... more

덧글

  • 라라 2009/05/13 00:34 # 답글

    ??ps에 휘트니스 사정거리가 10km라는건 오타 아닌가요?
  • 문제중년 2009/05/13 00:56 # 답글

    사거리 10km는 451구경 휘트워스 라이플이 아니라
    2.75인치 12파운드 휘트워스 라이플에 대한 겁니다.

    혼동이 오신듯하니 2.75인치 20파운드 휘트워스 강선 후장포라 하면
    쉽게 되겠습니까?

    이 휘트워스 라이플은 12파운드에 길이 10과 7/8인치짜리 포탄을 발사하고
    1.75 파운드 정도의 장약으로 40도 아래 38이나 36도 정도의 사각을 줘서
    쏠 경우 1만 야드정도는 날아가줬다고 하죠.
    명중률도 괜찮았고 사거리가 무엇보다 매력적이었으며 쏘면 독특한 소리까지
    나는 경우가 있어서 저걸 맞는 쪽에서는 싫어했다는 소리도 있죠.

    여튼 1만 야드면 9km 살짝 넘는 정도인데 글에 따라서는 10km 가까이
    날아가기도 했더라는 소리가 있어서요.
    기왕이면 큰게 좋죠.
  • 라라 2009/05/13 01:58 # 답글

    아 그렇군요 라이플이라 해서 총으로 생각해서요 그 당시엔 포도 총으로 햇군요; 그림을 보니 영화에서 본 북군 포들과 비슷해 보이네요
  • 문제중년 2009/05/13 09:22 # 답글

    포를 총이라 부른게 아니라,
    라이플(rifle)이란 단어가 단순하게 소총이란 의미외에 강선(선조)을 가진
    화기(총 + 포)를 지칭하는 단어기도 하다는 겁니다.
    그러니 문맥등을 맞춰 적당히 이해하는 수고가 필요하다라는거죠.
  • 늄늄시아 2009/05/13 12:39 # 답글

    육각강선... 저 강선은 "깍는" 것인가요? 아니면 "두드리는" 것 인가요?
    예전에 얼핏 듣기로는 꼬아진 육각형의 심봉을 잘 달구어진 파이프에 넣은 후 햄머포징해서 만든다고 얼핏 본것 같은데 말이에요.
  • 문제중년 2009/05/13 17:15 # 답글

    휘트워스 강선같은건 깍으려면 심난합니다.
    그래서 요즘이라면 햄머 포징을 하거나 아니면 그와 비슷한 만드렐(심봉) 대고
    그 주변에 강을 펴서 누르면서 모양잡는 방법을 씁니다.

    마침 저 휘트워스 영감님이 fluid compressed steel을 만드는 방법에 대해
    조애가 깊으셨던터라 심봉 대고 그 주변에 재료 댄 다음 롤러 따위로 죽 눌러서
    모양 잡고 나중에 심봉 빼내는 방법을 쓰게 됩니다. (지금도 드물게 이 방법과
    비슷한 방식으로 총열을 만들기도 합니다. 터키같은 경우. 단, 녹인 금속이
    아니라 좀 더 특별하게 잡은 강을 써서 하게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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